#01-01. 한 시대의 이름 — 전국
전국(戰國). 한자 두 자. 풀어보면 "나라끼리 싸우다".
한 시대의 이름이 이토록 거칠게 붙는 경우는 드물다. 에도 시대에는 "에도", 헤이안 시대에는 "헤이안", 나라 시대에는 "나라" — 수도의 이름을 따왔다. 전국시대만 다르다. 수도가 있기는 했지만 그 수도가 이 시대를 대표하지 못했다. 교토(京都)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다만 수도로서의 의미가 비어 있었다.
#언제인가
역사가는 시기를 그어 보인다 — 1467년 오닌의 난(応仁の乱) 부터 1603년 에도 막부의 성립까지, 약 백삼십 년.
하지만 그 시대를 산 사람에게 그런 시작과 끝이 또렷했을 리 없다. 그들에게 전국은 그들의 아버지가 겪었고, 그들이 겪고 있으며, 그들의 자식도 겪을 그것 이었다. 태어나자 싸움이었고, 죽을 때도 싸움이었다.
"할아버지가 전쟁에서 죽었고, 아버지가 전쟁에서 죽었으니, 나도 전쟁에서 죽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내 아들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이다." — 어느 이름 없는 아시가루의 말로 전해지는 구절
#왜 시작되었나
교과서는 간단히 말한다. 중앙의 힘이 약해졌다. 지방의 호족들이 각자 권력을 잡았다. 서로 싸웠다.
이 간단한 말 뒤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 쇼군의 뼈가 부러졌다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의 아시카가(足利) 쇼군가는 한때 강했다. 그러나 15세기 중반, 아시카가 가문 내부의 후계 다툼이 터졌다. 그 다툼은 오닌의 난 으로 불렸다. 교토가 불탔다. 11년간 탔다. 전성의 무사들이 교토 거리에서 서로를 베었다.
교토가 재가 되었을 때, 이미 쇼군가는 이름만 남은 껍데기였다.
#둘째 — 지방의 수호대명(守護大名)이 자기 땅의 왕이 되었다
쇼군 아래 각 지방을 다스리던 것은 수호대명 이라 불리는 영주들이었다. 본래는 쇼군의 대리인. 쇼군이 약해지자, 그들은 스스로 왕이 되었다. 자기 농민에게 세금을 거두고, 자기 사무라이를 기르고, 이웃 수호대명과 싸웠다.
이들이 전국 다이묘(戰國大名) 의 첫 세대다.
#셋째 — 아래에서 올라온 자들이 위의 자리를 빼앗았다
전국시대의 또 다른 이름은 하극상(下剋上) — 아래가 위를 넘는 시대.
가신이 주인을 배신했다. 군부(軍部)의 부장이 상관을 베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작은 성주가 이웃 대성을 멸망시켰다. 농민이 대명가의 첩의 시종이 되었다가, 한 대에 영주가 되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설이 그것이다. 그는 원래 아시가루였다.
이 하극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규칙이 무너진 시대이기 때문. 혈통은 보증이 아니었다. 칼과 머리와 운이 보증이었다.
#바깥에서 온 것들
전국의 혼돈 한가운데로 바다 건너의 물건과 생각 이 들어왔다.
- 1543년 — 포르투갈인이 다네가시마(種子島) 섬에 표류했다. 그들이 내린 무기가 철포(鉄砲·화승총). 몇 년 만에 일본 장인들이 이것을 복제해 만들기 시작. 전장의 규칙이 바뀌었다. 칼과 활의 시대가 저물고, 불과 납의 시대가 시작됐다.
- 1549년 —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가 가고시마에 상륙. 기리시탄(切支丹) — 천주교의 일본 이름 — 이 들어왔다. 규슈의 일부 다이묘가 개종. 교토에도 교회가 세워졌다. 이 낯선 신앙은 반세기 뒤 잔혹히 탄압받게 되지만, 그 사이에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 남만 무역로, 설탕·시계·유리, 새로운 의학과 천문학.
이 둘은 전국시대를 더 이상 "일본 안의 전쟁"으로만 남게 하지 않았다. 세계가 일본의 문을 두드렸다.
#어떤 공기였는가
이 시대의 공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일을 장담하지 못한다".
- 오늘의 주군이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
- 오늘의 친구가 내일 배신할 수 있다.
- 오늘의 성이 내일 불탈 수 있다.
- 오늘의 아내와 자식이 내일 살해당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의 밥을 먹고, 오늘의 술을 마시고, 오늘의 여자를 안고, 오늘의 칼을 닦았다.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구체적이 된다. 추상적 미래가 없으면, 눈앞의 밥알 하나가 또렷해진다.
이 구체성이 전국시대의 미학이다. 다도(茶道)가 이 시대에 가장 깊어진 것도, 와카(和歌)가 병사의 유서로 쓰인 것도, 꽃꽂이(生け花)가 성주의 예법이 된 것도 — 모두 이 "내일이 없을지 모르니 오늘이 간절하다" 는 감정에서 나왔다.
#세 명의 이름
이 시대를 말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세 이름이 있다. 그들은 한 세기의 끝에서 차례로 일본을 통일해 갔다.
-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 — 규칙을 부순 자. 1571년 히에이산(比叡山) 소각 으로 거대 사원 세력을 꺾고, 1575년 나가시노 전투 에서는 "철포 3단 사격" 통설과 함께 기마 무사의 시대를 꺾은 상징으로 기억된다. 천하포무(天下布武) — "천하에 무(武)를 편다" — 라는 인장을 찍었다. 만 48세 (한국 나이 49세) 에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배신당해 교토의 혼노지(本能寺) 에서 자결.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 — 낮은 잡역에서 아시가루를 거쳐 천하인까지 오른 자.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일본을 거의 통일. 1592·1597년 조선 침략(임진왜란·정유재란) 을 일으켜 동아시아를 피에 물들였다. 늙어 어린 아들 걱정에 마음이 흐려졌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1543–1616) — 인내의 달인. 반세기를 기다렸다. 히데요시 사후 세키가하라 전투(1600) 에서 승리, 1603년 에도에 막부를 세웠다. 전국시대의 마침표.
이 셋의 일본 속담이 있다.
"노부나가가 쌀을 찧고, 히데요시가 떡을 빚고, 이에야스가 그 떡을 먹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그런데 — 이 시대의 일본에는 한 가지 더 있다. 역사 교과서에는 적혀 있지 않은 것.
영계의 문이 열렸다. 오니가 산에서 내려왔고, 텐구가 소나무 위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죽은 자의 원한이 형태를 갖고 전장을 떠돌았다. 사무라이는 적장뿐 아니라 요마를 상대해야 했고, 영주는 음양사를 고용해야 했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전국시대" 의 의미가 하나 더 붙는다 — 사람끼리 싸우는 시대이자, 사람과 다른 것들이 함께 걷는 시대.
다음 장부터는 그 세계의 결을 하나씩 짚는다.
"백삼십 년간 싸운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이 전부 전쟁이라는 뜻이다." — 어느 유학자의 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