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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전쟁이 일상이 되었을 때

이 시대의 아이는 전쟁을 모르는 어른을 본 적이 없다.


#전쟁은 어떻게 거기에 있었는가

전쟁이 사건이 아니라 계절 처럼 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김을 매고, 가을에 추수하고, 겨울에 이웃 다이묘가 쳐들어온다 — 혹은 우리 다이묘가 이웃을 친다. 이것이 한 해의 리듬처럼 여겨지곤 했다. 다만 실제 전쟁 시기는 지역의 작황과 병참, 공성전인지 야전인지에 따라 달랐다. 어떤 전쟁은 가을 수확을 노렸고, 어떤 전쟁은 농한기에 병력을 오래 묶어 두는 식으로 벌어졌다.

"평화 시기"라는 말이 이 시대엔 기묘하게 들린다. 전쟁이 멈춘 몇 달을 평화 시기라 부를 뿐이다. 몇 년 가는 평화는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평화를 "잠시 숨 고르는 시간" 으로 이해했다.


#전쟁의 세 가지 크기

#첫 번째 — 대전투 (大會戰)

만 명 단위의 병사가 들판에서 맞붙는 것. 세키가하라(1600), 나가시노(1575), 가와나카지마(1561년 제4차)처럼 이름이 남는 전투들. 그리고 — 전국의 마지막 한 자락,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임진왜란 1592·정유재란 1597)바다를 건너간 대전투였다. 십수만의 일본 병사가 배를 타고 조선으로 향했고, 그 중 적잖은 수가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의 전국이 끝난 뒤에도 — 조선 반도의 들판엔 그 전쟁의 상처가 오래 남았다.

사실 대전투는 드물다. 한 전국 다이묘의 평생에 몇 번 있을까 말까. 대전투는 결판을 내는 싸움이다 — 이겨서 영토를 확장하거나, 져서 몰살당하거나.

대전투의 풍경은 거대하고 단순하다:

  • 기마 무사가 선두에서 돌진한다. 갑옷 부딪히는 소리. 말발굽 소리.
  • 아시가루 창병이 숲처럼 서서 기마를 받는다. 창대가 부러지는 소리.
  • 궁병이 뒤에서 비를 쏟는다. 활 시위 소리가 천 개 겹친다.
  • 철포대가 있으면 그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진다. 화약 냄새가 남는다.

전투 후의 풍경은 더 단순하다. 쌓인 시체. 까마귀. 죽은 자들의 부장품을 챙기는 민중.

#두 번째 — 소규모 교전 (小競り合い)

이것이 훨씬 많았다. 수십 명 ~ 수백 명 이 산길·다리·강가에서 부딪힌다. 이웃 영지의 경계에서, 공물을 옮기는 길에서, 간첩을 잡으러 간 사이에. 히토도리(人取り·사람 사냥) — 적 마을의 사람을 납치·인신매매하는 것 — 도 소규모 교전의 한 축이었다. 병사만 아니라 민간인도 이 전쟁의 "전리품"이 됐다.

주인공은 대부분 이런 교전에서 싸웠다. 분대 단위, 소대 단위. 이름도 없이, 보고서도 없이, 그러나 죽는 사람은 있다.

소규모 교전은 일상적이다. 한 달에 몇 번씩 있을 수 있다. 어떤 병사는 "이번 주엔 세 번 싸웠다" 라고 말한다.

#세 번째 — 공성 (攻城)

성을 둘러싸고 치는 것. 길면 몇 달, 짧아도 며칠.

공성의 주인공은 싸우는 자가 아니라 굶주림이다. 공격 측은 성 주변을 둘러싸고 보급을 끊는다. 성 안의 사람들이 먹을 것이 떨어진다. 우물이 마른다. 병이 돈다.

돗토리성 굶김 공성(鳥取の渇え殺し·1581) — 히데요시가 벌인 전설적 공성. 3개월간 포위 속에 성 안은 쥐를 먹고, 가죽을 끓여 먹고, 나중엔 시체에 손을 댔다 고 전해진다. 오다와라 공성(1590) 도 3개월을 끌었지만, 이건 반대로 성 안의 호조(北条) 가문의 무기력한 논의로 유명 — "오다와라 회담(小田原評定)" 은 지금도 결정 못 내는 끝없는 회의의 대명사.

공성이 끝나는 방식은 세 가지다 — 항복, 함락, 화의. 항복은 성주가 배를 가르고(할복) 그의 가신들의 목숨은 살려달라고 청하는 것. 함락은 성벽이 뚫려 안의 사람이 모두 죽는 것. 화의는 드물었다.


#그리고 약탈

전쟁의 진짜 일상은 약탈이었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국경에서, 병사들은 "밭에서 무엇이든 뜯어가" 는 것이 기본이었다. 닭, 돼지, 채소, 심지어 사람 — 특히 젊은 여자는 팔려고 잡아갔다.

전쟁사(戰場史)가 기록하지 않는 이 부분을, 민중은 가장 또렷하게 기억한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에게 평화가 온 것은 아니었다. 전쟁이 끝났다는 말은, 우리 마을의 젊은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돌아왔다 해도 빈 손이다." — 16세기 미농 지방 농민 유서의 일부


#누가 싸웠는가

전국의 군대는 세 층으로 나뉜다.

  • 사무라이 — 무사. 갑옷을 입고, 장검을 든다. 본래는 말을 탔다. 한 영지의 주인에게 대대로 충성하는 직업 군인.
  • 아시가루(足輕) — 보병. 농번기에는 농민이었다가, 농한기에 징발되어 창과 철포를 든다. 전체 군대의 70~80%. 전열에서 죽는 숫자는 대부분 이들.
  • 시노비(忍び)·난부(南武) — 첩자·암살자. 공식 계급이 아닌 비정규군.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음.

#사무라이의 전쟁과 아시가루의 전쟁

같은 전장에 서도, 사무라이와 아시가루가 경험하는 전쟁은 다르다.

사무라이에게 전쟁은 명예의 무대였다. 적장을 베고, 이름을 드날리고, 주군에게 기록되는 것. 죽어도 "수급(首級)이 올랐다"는 기록이 남는다. 그 기록이 자식의 녹봉이 된다.

아시가루에게 전쟁은 일회성의 운이었다. 살아남으면 집에 돌아가고, 죽으면 아무 기록도 남지 않는다. 이름도 얼굴도. 고향에서 어머니가 몇 년 더 기다리다가, 결국 빈 자리에 위패를 세운다.

사무라이의 묘는 있다. 아시가루의 묘는 없다. 전국시대 전사자의 99%가 이름 없이 묻혔다.


#이 시대의 전쟁이 특별한 또 하나의 것

영계의 문이 열린 뒤, 전장은 이중화되었다.

전쟁 중인 벌판에 원령(怨霊) 이 걷는다. 전에 죽은 병사들의 원한이 형태를 얻어 새로 오는 병사들을 베는 것. 적이 둘이다 — 인간 적 과 요마 적.

대 다이묘들은 출전 전 반드시 음양사(陰陽師) 또는 밀교승(密教僧) 을 파견해 전장을 정화한다. "부정을 닦아내는 의식"이 전쟁 준비의 한 축이 되었다. 이 의식을 소홀히 하면 — 아군 병사가 제 아군에게 칼을 휘두르는 일이 생긴다. 원령에 홀린 병사의 손이 그의 뜻이 아니게 움직이는 것.

사무라이 가문의 저녁 기도문에 한 줄이 더해졌다:

"오늘 벤 자의 원한이 내게 돌아오지 않기를."

이 한 줄 때문에, 이 시대의 사무라이는 단순한 군인이 아니다.


#한 풍경으로 마침

전쟁이 끝난 들판의 저녁. 까마귀가 모였다. 부상당한 아시가루 하나가 발을 절며 자기 마을 방향으로 걷는다. 창은 버렸다 — 무겁다. 갑옷도 벗었다. 그저 피 묻은 삼베 옷 하나.

길가에 작은 도조신(道祖神) 의 돌이 서 있다. 그는 그 앞에 잠깐 선다. 기도라기엔 길고, 기도가 아니라기엔 짧다. 입술이 움직인다.

"다음 전쟁에는 가지 말게 해 주십시오."

도조신은 답하지 않는다. 저녁 바람이 분다.

그는 다시 걷는다. 마을이 보인다. 저 멀리서 누군가 밥을 짓는 연기가 오른다. 살았다. 오늘은 살았다.

다음 계절엔 다시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