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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영계가 열린 밤부터

이 세계가 현실 전국시대와 다른 단 하나의 지점. 영계가 열렸다.


#언제 열렸는가

정확한 날짜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노승(老僧)은 오닌의 난(1467) 때라 한다 — 교토가 불탈 때, 그 불의 열기에 경계가 녹았다고. 어떤 음양사는 더 훨씬 오래 전이라 한다 — 영계는 언제나 조금씩 열려 있었지만, 전국의 피가 그 틈을 벌려 놓았다고.

민중의 기억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할머니 이야기 하나: "옛날, 내가 어릴 때에는 요마를 본 적이 없단다. 산에 가도, 강에 가도, 그냥 바람소리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해 여름 이후로, 밤마다 먼 산에서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단다. 늑대도 아니고 곰도 아닌 소리. 그때부터였지."

할아버지 이야기 하나: "아니야, 내가 어릴 때도 있었어. 마을 뒤 숲에 할머니 유령이 있었고, 우물에 이따금 손이 나왔지. 다만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다. 지금은 너무 많아."

진실은 아마 둘 사이 어디쯤이다. 영계는 항상 조금씩 있었고, 전국의 피가 그 틈을 더 벌렸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 많다.


#사람들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이것은 한 번의 사건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다. 천천히, 마을마다.

어느 해 봄, 어떤 마을에서 밭을 갈던 농부가 사라졌다. 며칠 뒤 그의 시체가 산에서 발견됐다. 몸엔 상처가 없고, 얼굴은 — 공포에 얼어 있었다. 노파는 "카미카쿠시(神隠し)" — "신에게 숨겨졌다" — 라 불렀다. 텐구(天狗)에게 잡혀갔다 돌아왔다 는 뜻. 처음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다음 달에는 옆 마을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다음 달에는 강 건너 마을에서. 반년쯤 지나 영지 전체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다이묘의 귀에 들어간다. 다이묘는 음양사를 부른다. 음양사는 산에 들어가 사흘을 기도하고 나와 한 마디 한다.

"영계(靈界)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이것이 한 영지의 공식 발견이다. 일본 열도 전체에서 이 과정이 수십 번, 수백 번 반복되었다. 다이묘마다 조금씩 다른 시기에, 조금씩 다른 이유로.


#그리고 일상이 바뀌었다

한 번 "영계가 열렸다"는 것이 공식 사실이 되면, 마을의 일상이 바뀐다.

#밤의 규칙이 바뀐다

옛날엔 밤에 나가도 됐다. 그냥 어두웠을 뿐이다. 지금은 밤에 나가는 것이 위험하다. 문을 걸어 잠근다. 부적을 문에 붙인다. 아이들에게 "밤에 이름을 부르지 마라" 고 가르친다. 이름을 부르면 이름 없는 것이 대답할 수 있다.

#축제가 바뀐다

계절의 축제(마츠리)가 더 격렬해졌다. 옛날엔 풍작을 비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부정을 쫓는 의미가 더 커졌다. 춤이 더 길어지고, 불이 더 크게 타고, 소금이 더 많이 뿌려진다.

특히 경계의 계절 — 봄·가을의 피안(彼岸·춘분·추분 전후 7일) 과 여름의 오본(お盆·음력 7월 중순) — 에 의식이 집중된다. 피안에는 이승과 저승이 가장 가까워진다고 하고, 오본에는 조상의 영혼이 돌아온다. 이 시기엔 아귀(餓鬼) 도 함께 돌아와 시체를 찾는다. 그래서 오본의 끝엔 정령류(精霊流し) — 종이등을 강에 띄워 영을 돌려보내는 의식 — 을 반드시 올린다.

#장례가 바뀐다

죽은 자의 처리가 중요해졌다. 함부로 묻으면 원령이 된다. 승려가 반드시 경을 읽어야 한다. 가난한 자는 경을 읽어줄 승려를 못 구해 — 가족이 손수 불공을 드린다. 그 가족이 몇 주 뒤 죽은 자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여행이 바뀐다

길을 떠나는 자는 도조신(道祖神) 앞에 반드시 절한다. 주머니에 복숭아 가지 를 넣는다. 밤이 오기 전 꼭 마을로 들어간다. 야숙(野宿)은 정말로 위험한 일이 되었다.


#사무라이에게 이것은

사무라이에게 영계 개방은 새로운 적을 의미한다. 그리고 새로운 동료도.

#적이 늘었다

전에는 인간 적만 상대하면 됐다. 지금은 — 원령도 상대해야 한다. 어떤 것은 베어도 다시 일어나고, 어떤 것은 활로 맞춰도 그림자처럼 흩어진다. 모든 요마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적이거나 비실체에 가까운 적을 만나면 평소의 칼과 창만으로는 버겁다. 그래서 사무라이는 퇴마 기법을 익히고, 음양사나 승려의 힘을 빌리게 되었다.

#동료가 새로 생겼다

한편으론 음양사·밀교승·무녀가 전장의 동료가 되었다. 그들은 칼을 쥐지 않지만, 그들이 없으면 전장이 성립하지 않는다. 사무라이가 창을 든 옆에, 승려가 염불을 외우며 서 있는 풍경 — 이것이 전국의 전투 대형이다.

"옛날의 전투는 칼과 창만 있으면 됐다. 지금의 전투에는 부적도 있어야 한다." — 어느 늙은 무장의 회고


#다이묘에게 이것은

다이묘에게 영계 개방은 새로운 권력 자원을 의미한다.

#음양사 · 승려 조직화

각 다이묘가는 자신만의 음양사 집단, 퇴마승 집단, 무녀 집단을 거느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개인 신앙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적 자원이다. 이웃 다이묘보다 더 강한 음양사를 보유하는 것이 — 더 강한 사무라이를 보유하는 것만큼 중요해졌다.

#요마를 이용하는 자들

어떤 다이묘는 요마를 이용하려 했다. 숲의 오니와 계약을 맺고 이웃을 공격하게 하거나, 원령을 길러 첩자로 쓰거나. 이런 다이묘는 대체로 일찍 망한다 — 요마는 계약을 배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는 강했다. 그 잠시 동안 수많은 이웃이 무너졌다.

"요마는 칼이지, 손이 아니다. 잠시는 벨 수 있어도 끝내는 당신을 벨 것이다." — 어느 음양사의 경고


#한 풍경으로 마침

한 마을의 할머니가 저녁에 손자에게 이야기를 한다.

"할미가 어릴 땐, 마을 뒤 산에 호랑이가 있었다."

"호랑이요?"

"그래, 호랑이. 저녁 지나면 할미도 집 안에 있었지. 호랑이가 무섭잖니."

"지금은 뭐가 있어요?"

할머니가 잠시 말을 멈춘다. 창 밖을 본다. 어둠이 내리고 있다. 먼 산에서 소리가 들린다 — 울음 소리. 늑대도 아니고 곰도 아닌, 이름 모를 어떤 것.

"지금은 말이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손자가 할머니의 손을 꼭 잡는다.

"하지만 할미가 부적 붙였으니 걱정 마라."

문간의 부적이 바람에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은 부적이지, 그 뒤에 있는 것이 아니다 — 이제 그것이 당연한 시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