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2. 아시가루 — 낮엔 밭, 밤엔 창
그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는다. 그의 얼굴도.
#아시가루란 이름
족경(足輕) — 한자 그대로 풀면 "발이 가벼운 자". 갑옷이 가볍거나 말이 없거나 — 여하튼 빨리 움직이는 보병. 중앙의 정규 무사가 아닌, 필요할 때 불러 쓰는 병사.
전국시대의 군대를 이루는 70~80% 가 아시가루다. 사무라이는 눈에 띄지만 수는 적다. 대부분의 전사자는 아시가루이고, 대부분의 돌격을 해내는 것도 아시가루다.
#그는 누구였는가
대개 그는 농민이었다.
한 농민이 어느 날 마을 대표자에게 불려 간다. "이번 전쟁에 우리 마을에서 다섯 명을 내야 한다." 다섯 명 중에 그가 뽑혔다. 뽑히는 기준은 분명하지 않다. 몸이 건강한 청년 이 첫 번째, 그 다음은 집안 사정이 덜 걸리는 자. 장남은 보통 제외된다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니).
뽑힌 그는 며칠 후 소집 장소에 나간다. 짧은 훈련 — 창 잡는 법, 전열 맞추는 법, 주인을 부르는 법 — 을 몇 주 받는다. 그 다음 전장.
#무장
아시가루의 무장은 단순하다.
- 창(槍·야리) — 가장 흔한 무기. 아시가루의 나가에야리(長柄槍·장창) 은 3~6미터 — 오다 노부나가 부대는 특히 길어, 다섯 켄(약 9미터) 짜리도 있었다 한다. 혼자선 거추장스럽다. 여럿이 숲처럼 늘어서야 비로소 진형이 된다.
- 삼각 삿갓(陣笠·진가사) — 철로 만든 넓은 삿갓. 화살을 막는다.
- 도우마루(胴丸) — 몸통만 감싸는 가벼운 갑옷. 사무라이의 오요로이(大鎧) 에 비하면 초라하다.
- 칼 — 있으면 좋지만 없는 자도 많다. 주로 사무라이의 것을 주워 쓴다.
어떤 아시가루는 철포(鐵砲) 를 받는다. 1543년 이후 다네가시마에 전래된 화승총. 이것을 든 자는 철포 아시가루(鐵砲足輕) 라 불리며, 훈련을 더 받고 녹봉도 조금 더 받는다. 대신 전장에서 가장 먼저 죽는다 — 적 측 사무라이가 특히 노리기 때문.
#낮엔 밭, 밤엔 창
아시가루의 삶은 두 겹 으로 나뉜다.
#농번기 (農繁期) — 봄·여름·가을
그는 농민이다. 모를 심고, 김을 매고, 추수한다. 그의 아내는 베틀을 돌리고, 그의 아이는 밭에서 참새를 쫓는다. 이 시기에 전쟁이 나면 — 다이묘가 곤란해진다. 농민들이 전장으로 불려 오면 밭이 황폐해진다. 그 다음 해에 먹을 것이 없어진다. 그래서 다이묘는 대규모 전쟁을 가능하면 농한기로 미루려 했다. 그러나 실제 전쟁 시기는 지역 사정과 병참, 공성전 여부에 따라 달라져 추수철 출병도 드물지 않았다.
#농한기 (農閑期) — 겨울
그는 병사다. 소집된다. 몇 달 간 전장에 나간다. 살아 돌아오면 다시 농민.
이 이중 생활이 그의 일생이다. 아홉 번 소집되어 아홉 번 살아 돌아온 자도 있고, 첫 번째 소집에서 죽은 자도 있다. 운이다.
#전장에서
#그가 죽는 방식
아시가루의 죽음은 영광스럽지 않다.
- 화살비에 맞아 — 수백 개의 화살 중 하나. 누가 쏜 것인지 모른다.
- 창에 찔려 — 적 아시가루의 창. 서로 창을 섞다가, 한 쪽이 먼저 쓰러진다.
- 기마에 밟혀 — 적 사무라이의 말이 지나간 자리에 그가 있었다.
- 철포 탄에 맞아 — 먼 데서 날아온 납탄. 철 삿갓을 뚫는다.
- 부상 후 감염 — 몇 날을 앓다가, 간단한 상처가 곪아 죽는다.
사무라이는 "수급을 올렸다" 는 기록이 남는다. 아시가루는 숫자만 남는다. 전투 후 기록에 "사자 123명". 그 중 한 명이 그다.
#그가 살아 돌아오는 방식
운이 좋으면 그는 살아 돌아온다. 어깨에 상처, 다리에 상처, 그러나 살아 있다.
그는 집에 돌아가 몇 달을 앓는다. 아내가 간호한다. 눈이 안 오는 밤에 그는 악몽을 꾼다 — 전장에서 본 것들. 친구가 죽던 자리. 적 아시가루 하나가 자기 창에 찔려 쓰러지며 짓던 표정. 그 표정이 몇 년을 따라다닌다.
봄이 오면 그는 다시 밭에 나간다. 기력이 전부 돌아오진 않았다. 하지만 밥은 벌어야 한다. 이웃이 말한다 — "돌아와서 다행이오." 그는 웃는다. 웃음 뒤에 전장에서 본 것들이 있다.
#약탈과 유혹
아시가루의 실수는 자주 약탈에서 온다.
전쟁에 소집된 가난한 농민에게 — 적 영지의 마을이 유혹이다. 지친 동료들이 한 집을 뒤진다. 쌀을 찾는다. 때로 사람까지 잡는다. 이 히토도리(人取り·사람 사냥) — 적 영지의 민간인을 납치해 노예로 팔거나 인질로 삼는 것 — 은 이 시대의 전장에서 공공연한 일이었다. 이걸 본 그는 멈추려 하지만 — 지친 동료들은 지휘관 없는 시간에 돌변한다.
그가 멈추지 못하면 — 그도 약탈자다. 도덕적으로는 죄인. 법적으로는 "전시 아시가루의 일상적 행위". 이 경계가 흐려져 있다.
그가 멈추려다 동료와 싸우면 — 그는 내일 전장에서 뒤에서 찔린다. 동료의 창에.
이 시대 아시가루의 윤리는 깨끗하지 않다. 깨끗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리고 요마
영계가 열린 뒤 아시가루의 전장에는 요마도 있다.
사무라이는 퇴마 기법을 익힐 수도, 신기를 받을 수도 있다. 아시가루에겐 그런 것이 없다. 그는 부적 하나에 의지한다. 마을 무녀가 싸구려 부적을 그의 삿갓 안쪽에 붙여 주었다. 그는 그 부적을 매일 한 번씩 만진다.
부적은 싸구려다. 약한 부정쯤은 막아도, 강한 요마 앞에선 역부족일 때가 많다. 그런 적이 나타나면 — 사무라이나 퇴마에 능한 자가 나서야 한다. 아시가루는 뒤로 물러나 그 광경을 바라본다. 자기 지휘관이 요마 앞에 서는 걸 본다.
사무라이가 지면 — 아시가루는 도망친다. 도망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아시가루에게 영광은 본디 없다. 살아 돌아가는 것이 선(善)이다.
#올라가는 자
그러나 — 전국은 하극상의 시대다. 아시가루 중에도 올라가는 자가 있다.
가장 유명한 예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와리의 농민 집안에서 태어나 오다 노부나가의 잡역으로 시작, 아시가루를 거쳐 천하인의 자리에 올랐다. 이것이 그의 일생의 전설. 물론 그가 예외였다. 대부분의 아시가루는 아시가루로 살다 죽는다. 그러나 이 예외가 가능했다는 사실이 — 이 시대의 공기를 바꾸었다. 나도 혹시 라는 생각이 먼 어느 구석에 있는 자, 그가 바로 전국시대의 아시가루다.
한편 잇키(一揆) 라는 다른 길도 있었다. 구니잇키(国一揆), 잇코잇키(一向一揆) — 농민·승려·하급 무사가 연합해 영주에 대항하는 무력 봉기. 가가(加賀)의 일향종은 백 년간 영주를 쫓아내고 "백성이 다스리는 나라"를 유지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이를 파괴한 1576~1580년의 이시야마 전쟁은 — 한 가지 다른 길의 종말이었다.
#이름 없는 자의 묘
전장에서 죽은 아시가루의 시체는 함께 묻힌다. 한 큰 구덩이에 여럿.
마을에서는 위패를 세운다. 이름이 없으면 "우리 마을의 아들" 이라고 쓴다. 누가 돌아오지 않았는지는 몇 달이 지나서야 확실해진다. 다른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혹시" 하며 겨울을 기다린다. 겨울이 오고, 봄이 오고, 여름이 와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위패를 세운다. 이름을 새긴다 — 아들의 이름. 그 이름은 아시가루 명부에 없다. 다이묘의 기록에도 없다. 오직 마을의 작은 신사에 새겨진다.
#한 문장으로
사무라이는 매일 칼을 닦는다. 아시가루는 매일 밭을 간다. 전쟁이 오면 둘 다 창을 든다. 오직 한 쪽만이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