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4. 낙척 — 길 위에 사는 사람들
사농공상 네 계급의 바깥에도 사람이 있다. 세상의 울타리가 없는 자들.
시대 주의: 본 장에 등장하는 요시와라·후미에·에타/히닌 제도·카쿠레 기리시탄의 일부는 전국시대 말기에 싹을 틔워 훗날 에도시대에 제도화·격화된 것들이다. 본문은 "이 시대에 이미 그 모양의 씨앗이 보였다"는 의미로 읽힐 것. 명확한 시대 구분은 본문에 표기한다.
#낙척이라는 단어
낙척(落魄) — 떨어질 낙, 혼 척. 말 그대로 "혼이 떨어진 자". 제자리를 잃고 떠도는 자.
일본어로는 "루로(流浪)" 또는 "히닌(非人)". 히닌은 문자 그대로 "사람이 아닌 자" — 잔혹한 표현이지만 이 시대의 사회가 그들을 부르던 방식이다.
본 장은 이들의 삶의 모습을 본다. 판단이 아니라 시선으로.
#낭인 (浪人)
#주군을 잃은 사무라이
주군이 망하거나, 주군에게 내쳐지거나, 스스로 떠난 사무라이. 그는 이제 녹봉이 없다. 생계가 없다.
그러나 그의 신분은 여전히 사무라이. 그는 칼을 차고 있고, 그의 말투는 사무라이의 것이다. 다만 — 먹을 것이 없다.
#하루
그는 길 위에서 잔다. 대문 옆에서, 처마 밑에서, 운 좋으면 주막의 헛간에서. 그는 목욕을 하지 못한다. 옷은 닳아간다. 머리가 헝클어진다. 칼만은 — 닦는다. 매일.
그는 일을 구한다. 다른 다이묘의 고용. 하지만 경쟁자가 많다. 다이묘들은 이미 자기 사무라이를 많이 거느리고 있다. 새 낭인을 받아줄 자리가 적다.
운이 좋으면 호위 일을 잡는다. 상인이 먼 길을 갈 때 고용한다. 한 번에 얼마쯤의 쌀을 받는다. 이 쌀로 몇 주를 견딘다.
운이 나쁘면 — 부랑자 다. 결국엔 칼을 팔아먹는다. 칼을 판 낭인은 이제 낭인이 아니다. 그는 농민도 상인도 아닌 무엇이 되었다.
#타류시합과 무사수행
어떤 낭인은 무사수행(武者修行) 의 길로 나선다. 지방을 돌며 각 가문·유파의 무사에게 타류시합(他流試合) 을 청한다. 이기면 — 이름이 붙는다. "이 지역의 아무개를 이긴 자". 그 이름으로 일자리가 들어온다. (훗날 에도시대에 발달할 "도장 깨기" 풍경은, 그 도장 자체가 전국시대엔 드물었다. 이 시대의 무사는 주로 가전(家伝)의 형(型) 과 실전으로 기량을 단련했다.)
지면 —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더 굴욕적으로 쫓겨날 수도 있다. 그는 다음 마을로 떠난다.
"칼을 쥔 자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주군이 있는 길, 없는 길. 없는 길은 끝없이 걷는 길이다." — 어느 낭인의 독백
#이 시대 낭인의 새로운 일
영계가 열린 뒤, 요마 퇴치가 낭인의 새 일이 되었다. 마을에서 요마가 나와 곤란하면, 사람들은 낭인을 고용한다. "자네, 저 요마를 퇴치하면 쌀 다섯 가마니 주겠네." 낭인은 칼을 들고 간다.
대개는 이긴다 — 요마가 약할 때. 때로는 죽는다 — 요마가 강할 때. 그가 죽어도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
그러나 가끔 — 노파 하나가 그의 묘를 세워준다. 이름 없는 묘.
#유녀 (遊女)
#사무라이의 아들을 낳을 수도 있는 자
유녀 — 몸을 파는 여성. 유곽(遊郭) 이라 불리는 구역에서 일한다. 교토의 로쿠조(六条)는 이 시대 배경으로 바로 써도 되지만, 에도의 요시와라 는 엄밀히는 1617년 이후의 장소다. 따라서 전국시대 배경에서 "요시와라 같은 공간" 을 구현하려면, 에도 시내의 공인 유곽 전신이나 후대 요시와라의 원형이 되는 거리로 처리하는 편이 좋다.
#누가 되는가
대체로 가난한 집 딸. 부모가 빚에 몰려 딸을 팔아야 했다. 부모는 눈물을 흘리며 딸에게 말한다 — "몇 년만 버티면 데려올게." 그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다른 경우 — 전쟁에서 잡혀 온 여자. 적 영지에서 약탈된 여자가 유곽에 팔린다. 그녀는 이름을 잃는다. 유곽에서 새 이름을 받는다. 옛 이름을 기억하지만 — 부르지 않는다.
#하루
낮에는 잠. 유녀의 일은 밤이다. 저녁에 단장한다 — 긴 기모노, 복잡한 머리 치장, 하얀 화장. 이 단장 자체가 예술이다.
밤에는 손님. 사무라이일 수도, 상인일 수도. 그녀는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고, 와카를 읊고 — 그리고 그 외의 것들도 한다. 이 모든 것을 그녀는 기술로 한다. 감정과는 분리된다.
손님이 특별한 경우 — 그녀는 첩(妾) 으로 올라갈 수 있다. 어느 사무라이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해, 유곽에서 빼내어 첩으로 삼는다. 이건 행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첩은 본처가 아니다. 그녀의 아이는 적자가 아니다. 복잡한 삶이 기다린다.
#이 시대 유녀의 또 다른 얼굴
영계가 열린 뒤 유녀 중에 특별한 자가 나타난다. 요마와 관계를 맺은 자. 요호(여우 요마)가 유녀의 몸을 빌리거나, 유녀가 우카노미타마(이나리) 의 파편을 얻거나.
어떤 유곽은 이나리 신사의 뒤뜰에 있다. 이 유곽의 유녀들은 여우의 딸 이라 불린다. 그녀들이 베푸는 축복은 — 돈 많은 상인에게 한 철 행운을 준다. 대신 그녀의 진짜 이름을 절대 묻지 말아야 한다.
#천민 (賤民·ひにん·히닌)
#세상의 가장 아래
공식 신분의 경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 — 훗날 에도시대에 "에타(穢多)·히닌(非人)" 이라는 차별 제도로 엄격히 격리될 이들이다. 전국시대에는 제도적 격리는 덜 엄격했으나, 실질적 차별은 이미 또렷했다. 직역하면 "더러움이 많은 자". 이들은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한다.
- 시체 처리 — 전쟁 후 시체를 옮기고 묻는 일.
- 짐승 가죽 벗기기 — 불교 가르침상 부정한 일이라 일반인은 하지 않는다.
- 피혁·가죽 가공 — 위의 연장.
- 형 집행자 — 죄인을 참수하거나 매질한다.
- 나환자(癩者) 돌보기 — 한센병 환자의 수발.
이들은 마을 밖에 따로 모여 산다. 외곽의 부라쿠(部落·촌). 일반 마을 사람들과 결혼하지 못한다. 그들의 자식은 태어날 때부터 에타다.
#그들의 자부심
그러나 — 이들에게도 삶의 결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공동체를 이룬다. 노래가 있고, 춤이 있고, 자기들의 신앙이 있다. 일반 신사에 못 들어가지만 — 자기들의 신을 섬긴다. 이들의 신은 대개 지장보살(地蔵菩薩) 이다. 지장은 지옥의 바닥까지 내려가 중생을 구하는 보살. 가장 낮은 자에게 가장 가까운 신.
#전쟁과 천민
전쟁이 일어나면 천민이 가장 바빠진다. 전장의 시체를 치우는 일. 시체에서 값나가는 것을 추리는 일 (전장의 청소). 이건 더러운 일이지만 — 돈이 된다. 때로 천민은 사무라이의 부속품보다 더 많은 돈을 모으기도 한다.
#이 시대 천민의 또 다른 얼굴
영계가 열린 뒤, 천민 중에 영적 감각이 강한 자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시체를 많이 다루다 보니 — 죽은 자의 소리를 듣는다. 원령을 본다. 요마와 대화한다.
일부는 이 재능으로 음양사나 무녀로 격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 침묵한다. 말하면 이단이 된다. 말하지 않으면 혼자 짊어진다. 선택지가 좋지 않다.
#떠돌이 예인 (放浪芸人)
#이름 없는 예술가들
비와 법사(琵琶法師) — 눈 먼 승려가 비와를 메고 돌며 전쟁 이야기(헤이케 이야기) 를 부른다. 노(能) 배우 — 가면을 쓰고 귀족의 뜰에서 춤추는 자. 일부는 유랑 극단으로 지방을 돈다. 가부키의 전조(前兆) — 이즈모의 오쿠니(出雲の阿国)가 이 시대 끝무렵 교토에서 춤추기 시작. 가부키의 시작. 꼭두각시(傀儡子·쿠구츠) — 인형극 하는 자. 신사 축제나 시장에서.
이들은 길에서 길로 다닌다. 고정된 집이 없다. 특정 영지에 속하지 않는다. 다이묘의 관할 바깥. 그래서 정보의 매개자가 된다. 한 영지의 소문을 다른 영지로 옮긴다. 첩자들이 예인의 탈을 쓰고 다니는 일도 많다.
#신과 가까운 자
이들은 공식 신분은 낮지만 — 신사·사원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 신사 축제는 그들의 춤과 음악이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들의 노래는 신을 부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두려워하며 동시에 초대한다. 신의 가까운 이웃.
#기리시탄 (切支丹)
#새로 온 신앙
1549년 프란시스코 하비에르가 일본에 온 뒤, 천주교 신앙이 퍼졌다. 특히 규슈와 사카이. 대명가 중에도 개종자가 있었다 — 오토모 소린(大友宗麟), 오무라 스미타다(大村純忠),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
#환영과 탄압
처음엔 환영받았다. 남만 무역의 이점이 있었다. 총, 철, 설탕, 새로운 지식. 도요토미 히데요시조차 한동안은 용인했다.
그러나 — 1587년 히데요시의 바테렌 추방령, 1612~1614년 에도 막부의 전면 금교. 이후 기리시탄은 처형된다. (훗날 1629년경부터 체계화될 후미에(踏み絵) — 예수상·마리아상을 밟고 지나가지 않으면 기리시탄으로 간주하여 처형하는 의식 — 은 에도시대의 풍경이다.)
전국 말기부터 에도 내내 많은 기리시탄이 숨었다. 이들이 카쿠레 기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숨은 기독교도). 집 안에 성모상을 숨기고, 관음상처럼 위장하고, 밖에서는 불교도처럼 행동한다. 몇 세대에 걸쳐 숨었다.
#이 시대 낙척 중에
기리시탄 중 일부는 도망자가 된다. 규슈에서 발각되어 동쪽으로 도망. 교토나 에도에서 이름을 바꾸고 산다. 아이들에게 조용히 가톨릭 기도문을 가르친다. "이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한 풍경으로 마침
어느 겨울 밤, 시골 길. 눈이 내린다.
한 낭인이 처마 아래에 앉아 있다. 춥다. 그의 옆에 비와 법사가 노래를 부른다 — 겐페이 전쟁의 노래. 길 저편에서 한 기리시탄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간다. 아이는 꽁꽁 언 손으로 어머니 옷자락을 잡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다. 서로의 존재를 모른 척한다. 이 모른 척함이 — 그들의 예의다. 낙척 끼리는 서로를 묻지 않는다. 묻지 않는 것이 자비다.
눈이 계속 내린다. 그들은 각자 자기의 밤을 견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