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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 요마란 무엇인가

요마는 괴물이 아니다. 요마는 이웃이다 — 조금 기이한, 그러나 이 세상 안의.


#한 단어, 여러 겹

요마(妖魔) — 두 글자. 요(妖)는 "이상한 것", 마(魔)는 "마성을 가진 것". 둘을 합치면 — 이 세상의 질서에서 약간 벗어난 존재.

그러나 일본어 원어로는 "요카이(妖怪)" 라 부르는 경우가 더 흔하다. 요(妖)와 괴(怪, 기이함)의 결합. 한국어로 옮길 때 "요마"라는 번역을 많이 쓴다. 본 책은 이 전통을 따른다.

중요한 것은 — 요마라는 단어가 아주 많은 것을 담는다는 사실. 서양의 "몬스터(monster)" 처럼 좁지 않다. 요마는:

  • 산의 오니(鬼)
  • 숲의 텐구(天狗)
  • 강의 갓파(河童)
  • 100년 된 우산(傘)이 걸어다니면 그것도 요마
  • 죽은 자가 원한을 품으면 그것도 요마
  • 여우가 사람으로 변하면 그것도 요마

이 모든 것이 한 이름으로 묶인다. 서양 분류로는 몬스터 · 정령 · 유령 · 신 · 악령 을 다 포함한다. 이 광범위함이 일본 요마관의 특징.


#요마와 신의 경계

"잘 모셔지는 신이 있고, 잘 모셔지지 못한 신이 있다. 후자를 요마라 부르기도 한다." — 민속학자의 말

놀랍지만 — 요마와 신은 같은 것이기도 하다. 경계가 흐릿하다.

#예시

  • 이나리(稻荷) — 곡물의 신. 신이다. 그러나 그의 사자(使者)인 여우가 장난을 치면 요마라 불린다. "여우 요마(狐妖·키츠네)".
  • 하치만 — 전쟁의 대신. 신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벌을 받는다. 그때의 하치만은 "벌하는 요마" 처럼 작동.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 원령이었다가 신이 된 자. 원령 상태일 때는 요마. 제신화된 후엔 . 같은 인격, 다른 대우.

이 흐릿함이 일본 영적 세계의 핵심이다. 존재의 본성이 요마와 신을 가르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대우가 가른다. 모시면 신이고, 모시지 않으면 요마다.


#요마의 기원 — 세 뿌리

요마는 보통 다음 셋 중 하나에서 태어난다.

#첫 번째 — 자연에서 태어난 것

산의 정령, 바다의 정령, 강의 정령. 자연의 인격화. 이들은 원래부터 있었다. 인간이 생기기 전부터.

  • 오니 — 산에 살던 존재. 인간과는 다른 종족. 덩치가 크고, 뿔이 있고, 붉거나 푸른 피부.
  • 텐구 — 깊은 숲에 사는 존재. 새의 특성 + 사람의 몸. 오만하고 지혜롭다.
  • 갓파 — 강에 사는 존재. 사람 아이 같은 몸에 물갈퀴. 머리 위에 접시 모양의 물그릇 있음. 그 물이 마르면 약해진다.
  • 산의 노파 (야마우바) — 깊은 산에 사는 여인 형태의 존재. 길 잃은 자를 유혹해 잡아먹는다고도, 도와준다고도.

#두 번째 — 오래된 것이 변한 것

100년 — 이 숫자가 중요하다. 100년 된 사물에는 영이 깃든다는 민간 신앙. 이것이 츠쿠모가미(付喪神).

  • 100년 된 우산이 걸어다님 (가라카사코조).
  • 100년 된 등잔이 말을 함 (쵸우친오바케).
  • 100년 된 빗자루가 마당을 스스로 쓸음.

이들은 대체로 해롭지 않다. 장난을 치는 정도. 그러나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 해로운 요마로 변할 수 있다.

#세 번째 — 사람에게서 나온 것

가장 많고 가장 슬픈 종류. 감정의 결정(結晶).

이 범주의 요마들은 혼자 오지 않는다. 때로 떼를 지어 움직인다 — 히야쿠키야코(百鬼夜行), 백 요마의 밤 행렬. 밤에 큰 길 위에 수많은 요마가 줄을 지어 지나가는 풍경. 이 행렬과 마주친 인간은 — 숨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름을 부르지 말고, 눈을 마주치지 말고. 잘못 엮이면 그 행렬에 끌려 들어간다.

  • 원령 (怨霊) —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영. 자기를 죽인 자 또는 일족을 저주.
  • 생령 (生霊)살아 있는 사람의 강한 집착이 형태가 되어 나타난 것. 무서운 것은 — 본인도 모른다. 자기 몸이 여기 있는데, 자기의 혼 일부가 남의 집 침실에 서서 그 사람을 노려본다.
  • 아귀 (餓鬼) — 굶어 죽은 자의 영. 배고픔에서 풀리지 못해 시체를 뜯는다.
  • 타타리가미 (祟り神) — 제대로 모셔지지 않은 신이 원한으로 변한 것. 신과 요마의 경계가 녹은 자리.

이들의 공통점 — "인간이 풀지 못한 감정"이 본체. 요마를 퇴치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 칼로 베어도 감정은 남기 때문. 감정을 풀어야 진짜 퇴치가 된다.


#요마와 유령의 차이

서양에서 "ghost"와 "monster"가 다르듯, 일본어에서도 유령(幽霊)요마(요카이) 는 조금 다르다.

#유령 (幽霊)

죽은 자의 영. 특정 인물. 이름이 있다. 특정 가족·특정 장소에 나타난다. 대개 발이 없다. 하얀 옷. 슬픈 얼굴. 원한이 풀리면 사라진다.

#요마

유령보다 넓은 범주. 유령을 포함하되, 자연 정령·변신체·기물신·원초적 존재 까지 다 포함. 이름이 없기도 하다. 발이 있기도 하다. 원한이 없기도 하다.

유령은 요마의 일부. 대부분의 유령은 원령 또는 아귀 로 분류된다. 그러나 모든 요마가 유령은 아니다. 오니는 유령이 아니다. 츠쿠모가미도 유령이 아니다.


#요마와 악마의 차이

또 다른 혼동. 기독교의 악마(Demon)요마는 다르다.

  • 악마선에 반대되는 악의 존재. 도덕적 타락을 유도한다. 인간을 지옥으로 끌어간다. 본성이 악.
  • 요마선악의 범주 바깥. 인간의 윤리를 따르지 않을 뿐, "악"이라 단정하기 어렵다. 오니가 사람을 먹을 때, 그것은 오니의 본성이지 악행이 아니다. 배고픈 늑대가 양을 먹는 것과 같다.

이 차이가 일본 영적 세계의 을 정한다. 요마는 악이 아니라 다르다. 다름과 공존할 방법을 찾는 것이 사람의 몫이다.


#그럼에도 요마는 위험하다

요마가 악이 아니라 해도 — 위험하다. 오니는 사람을 먹을 수 있다. 원령은 산 자를 홀려 죽일 수 있다. 여우는 사람을 속여 삶을 망칠 수 있다.

요마와의 관계는 협상과 경계다. 싸울 수도, 타협할 수도, 피할 수도 있다. 어떤 요마는 — 실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산의 노파가 길 잃은 자에게 밥을 차려주기도 하고, 갓파가 아픈 어린아이에게 약초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이 복잡함이 일본 요마관의 깊이다. 선명한 적이 아니라, 불확실한 이웃.


#이 시대의 특수성

영계가 열린 뒤 — 요마의 수가 늘었다. 전쟁의 피가 원령을 만들어낸다. 굶주린 자가 아귀가 된다. 버려진 물건이 츠쿠모가미가 된다. 이 시대 일본은 요마가 가장 많은 시대.

그래서 이 시대 사람들의 요마 감각이 이전보다 날카롭다. 먼 조상들의 이야기 속에서만 듣던 것을, 지금은 옆집에서 일어난 일로 듣는다.


#한 문장으로

요마는 괴물이 아니다. 이 세계 안에 같이 사는 어떤 것, 다만 우리 규칙을 따르지 않을 뿐인 것. 이웃이지만 낯선 이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