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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04/fc04-01-03-warrior-dawn.md

#무사의 여명

Fiction-Only. 본 문서는 헤이안 말 무사 부상의 시간선을 산문으로 제시한다. 전쟁 원칙(인간의 정치 분쟁) 이 본 문서의 중심 원칙이다.


#도입 단편 — 말발굽이 올라오다

도성의 귀족은 먼 변방의 흙냄새를 싫어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 흙냄새가 갑옷과 함께 궁문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발을 털고 들어오시오." 문지기가 말했다.

젊은 무사는 발을 멈췄다. 갑옷 아래로 말땀이 식고 있었다. "도중에 세 번 싸웠습니다. 두 번은 도적, 한 번은 사람을 흉내 낸 것이었습니다. 흙을 털 시간은 없었습니다."

안쪽의 귀족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도 궁 안에는 법도가 있소."

무사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불려 왔습니다. 법도가 닿지 않는 곳에서, 법도를 지키기 위해."

그 말은 무례했지만 틀리지 않았다. 무사는 처음부터 시대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는 먼저 불려 온 손이었다. 귀족이 더 이상 자기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을 때, 변방의 활과 칼이 도성으로 올라왔다.

#향 — 변두리에서 도성으로

10세기 어느 봄날, 동국 시모우사의 한 장원에서 한 무사가 활을 든다. 그는 자신을 「신황(新皇)」 이라 부른다. 이름은 타이라노 마사카도. 그가 들어 올린 활은 한 해도 못 가 잘리지만, 그 활이 들렸다는 사실 자체가 헤이안의 균형에 첫 균열을 냈다.

그로부터 백오십 년 후, 같은 동국에서 한 무사가 도호쿠의 산악을 평정한다. 「하치만 타로」 — 미나모토노 요시이에. 그의 군공은 천하에 알려졌으나 조정의 보상은 미미했다. 무가의 분노가 쌓였다.

다시 백 년이 지난 1156년, 도성에서 호겐의 난이 일어난다. 천황가가 둘로 갈라졌고, 후지와라가 둘로 갈라졌고, 그 결정을 무가가 내렸다. 「칼이 도성에 들어왔다」 — 헤이안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균형이 깨진 후 삼십 년만에 모든 것이 끝난다. 1185년 단노우라의 바다에서 헤이케 일족이 가라앉을 때, 사백 년 헤이안도 함께 가라앉는다.


#시간선 — 무사 부상의 200년

사건연도의미
마사카도의 난939~940동국 무사의 첫 반란. 조정 충격.
전9년의 역(役)1051~1062도호쿠 평정. 미나모토노 요리요시·요시이에 활약.
후3년의 역1083~1087도호쿠 재평정. 요시이에 권위 정점.
호겐의 난1156천황가·후지와라 내분. 무가가 결정.
헤이지의 난1159미나모토 vs 타이라. 타이라 승리.
키요모리 정점기1160~1180타이라노 키요모리 권력 정점. 1167 태정대신.
겐페이 전쟁1180~1185미나모토 vs 타이라. 타이라 멸망.
단노우라 해전1185헤이케 멸망. 헤이안 종료.

#헤이안 무사의 특징

후세의 일본 사무라이 — 카토리 신토류·신카게류 같은 검술 유파, 도장·면허개전·일기토의 무사도 — 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헤이안 무사의 본업은 활과 말이다.

#궁마(弓馬)의 도

「활과 말의 길」. 헤이안 무사의 표준 훈련은 궁마(弓馬), 곧 말 위에서 활을 다루는 기예다. 본 권의 메카닉은 이를 게임 용어로 야부사메(流鏑馬) 라 부른다. 검은 부수다. 칼은 말에서 내린 후의 마지막 수단이거나 의례용이었다.

#일기토(一騎打ち)

전투의 시작은 이름 외치기(名乗り) 였다. 두 무사가 가까이 다가가 자기 가문·이름·관위를 외친다 —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 가 명백해야 명예가 성립한다. 그 후 일대일 결투. 분대 전술은 약했다 — 한 사람의 무공이 한 사람의 명예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요로이(大鎧)

거대하고 화려한 갑주. 활시 방어에 우수하지만 도보 이동에는 무겁다. 후세 전국의 도우세이구소쿠(當世具足)와는 완전히 다른 미감이었다. 검은 옻칠 위에 붉은 실, 푸른 실을 엮어 만든 거친 화려함이 헤이안 갑주의 특징이다.

자세한 룰은 fc04-05-01-samurai.md.


#전쟁 원칙 (Canon)

이 원칙은 본 권 fc04 만이 아니라 fc 시리즈 전체의 핵심 원칙이다 (co-99-fc-future-planning.md 참조).

전쟁은 인간이 일으켰다. 후지와라 가문 내의 권력 다툼, 천황가의 분열, 무가의 신분 상승 욕망 — 모두 인간의 동기다. 요마가 무사를 부추기지 않았고, 요마가 군대를 직접 이끌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다. 전쟁이 끝난 후 죽은 자들이 원령이 되었다. 단노우라 해변에 가라앉은 헤이케 일족은 세토 내해의 원령헤이케가니(平家蟹) 전설로 이어졌고, 이 영적 잔향은 후대 권 (fc02·fc05·fc06) 에서 다뤄진다.

본 권에서 다룰 때:

  • 전쟁 자체 = 인간의 정치 분쟁. 요마 NPC 등장 금지.
  • 전쟁의 결과 = 원령 발생. fc04-02-02 에서 다룸.
  • 전쟁의 영적 잔향 = 후세 시나리오로 이어짐. fc04-99-00 닫는 글 참조.

#헤이안 말의 인물들 (인물 5인 외 짧게)

본 권의 인물 다섯에는 키요모리만 들어간다. 그 외에 본 시간선에 등장하는 무사들은 다음과 같이 짧게만 다룬다.

#타이라노 마사카도 (?~940)

동국 출신. 친족 분쟁에서 시작해 「신황」 자처에 이른 첫 반란자. 939년 거병, 940년 진압. 사후 효수된 머리가 동국으로 날아갔다는 전설이 생겼고, 이 머리는 도쿄 오테마치의 마사카도즈카(将門塚) 전승으로 이어진다 — 헤이안 원령 문화의 원형 중 하나.

#미나모토노 요시이에 (1039~1106)

「하치만 타로」. 도호쿠 평정의 영웅. 요리미츠의 직계 후손 중 한 사람. 그의 무공은 후세 무가의 모범이 되었으나, 당대 조정의 평가는 인색했다. 그의 자손이 백 년 뒤 헤이케를 멸한다.

#타이라노 시게모리 (1138~1179)

키요모리의 적자. 헤이케 일족 중 가장 절제된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의 죽음(1179) 이후 헤이케의 운이 빠르게 쇠했다 — 헤이케모노가타리는 그를 「헤이케의 마지막 양심」 으로 그렸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1147~1199)

헤이지의 난에서 어렸기에 살아남았다. 1180년 거병, 1185년 헤이케를 멸하고 1192년 가마쿠라 막부를 연다 — 헤이안의 끝과 가마쿠라의 시작에 동시에 서 있는 인물. 본 권에서는 1185 단노우라까지만 다루므로 짧게 등장.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 무사시보 벤케이

요리토모의 동생과 그 심복. 헤이케 멸망의 결정자. 단 두 사람은 본 권에서 한 단락 정도로만 다룬다 — 본격 시트는 fc03-99-01-kenshi-roster.md 검호 명부 (요시츠네)와 co-09-09-minamoto-specter.md 영령 시나리오에 있다. 또한 co-04-08-22-heroic-spirit-catalog.md 영령 카탈로그에 벤케이가 6단 영령으로 등록되어 있다.

본 권 fc04 는 그들의 「생전 시대」 다 — 후세 시나리오에서 영령으로 돌아오는 인물들이 아직 살아 있는 시기.


#

「무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헤이안의 우아함 뒤에 격동이 있었다. 키요모리·요시츠네·요리토모 등이 만든 정치극은 어느 모노가타리 못지않게 격렬했고, 어느 와카 못지않게 슬펐다. 평화의 끝과 전쟁의 시작 사이에 본 시간선이 있다.


#참조

#co — 직업·시나리오

#fc04 내

#fc 다른 권



무사의 새벽은 말발굽보다 먼저, 도성의 불안 속에서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