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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 삼도육심 해석 보조

삼도육심은 성격표가 아니다. 캐릭터가 자기 선택을 어떤 언어로 견디는지에 대한 지도다.


#도입 단편 — 마음이 바뀐 순간

전투가 끝난 뒤, 아무도 하루카가 언제 달라졌는지 말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같은 갑옷을 입었고, 같은 주군의 문장을 달았으며, 같은 방식으로 보고했다.

첫 번째 변화는 작은 것이었다. 피난민을 들여보내자는 제안을 듣고, 그는 "대의를 위해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에는 포로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세 번째에는 불탄 마을을 보며 "기록에는 남기겠다"고만 했다.

정종승이 그에게 물었다. "그 기록을 누가 읽습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살아남은 사람입니까?"

하루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집을 정리했다. 그 손놀림은 여전히 단정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GM은 그 순간 플레이어에게 말했다. "아직 심전이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충이 패의 말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선택이 중요합니다."

심은 갑자기 뒤집히지 않는다. 같은 말을 조금씩 다른 뜻으로 쓰기 시작할 때, 이미 길은 기울고 있다.

#기본 대응

co의 삼도육심은 이미 유·불·선(仙)을 기반으로 한다. 본 권은 여기에 역사적 유교·불교·선종(禪), 그리고 현도 쪽 신선 사상(仙)의 해설을 더한다.

삼도육심본 권의 해석 보조
예도 / 충유교적 충, 예, 의, 명분이 밝게 작동한다.
예도 / 패유교적 질서가 강압과 패권으로 변한다.
공도 / 자불교적 자비, 구제, 왕생, 보살행이 밝게 작동한다.
공도 / 허공과 무상을 허무로 오해하고 모든 의미를 놓는다.
현도 / 진신도·도교·신선 사상·자연 영성의 조화. 선종적 무심과 장면상 접점이 있다.
현도 / 마자연과 신선적 초월을 약육강식과 본능의 면허로 읽는다.
무심아직 길을 찾지 못했거나, 길을 버렸거나, 선종적 수행으로 집착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선(禪)을 어디에 둘 것인가

선종은 불교다. 따라서 사상 계보로는 공도와 가장 가깝다.

그러나 선종적 RP는 다음 세 곳과 닿는다.

접점이유
공도선종은 불교 내부의 수행 흐름이다. 공, 무상, 해탈과 연결된다.
무심집착을 끊는 수행이 무심의 장면 언어와 겹친다.
현도 / 진세계의 흐름과 하나 되는 묘사가 자연 영성처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선종 PC를 만들 때 자동으로 현도에 넣지 말 것. 먼저 그 캐릭터가 무엇을 믿는지 보아야 한다.

  • 자비와 해탈을 말하면 공도.
  • 아무 길도 붙잡지 못한 낭인이면 무심.
  • 산, 카미, 바람, 대지와 하나 됨을 말하면 현도.
  • 주군을 위해 선 수행을 도구화하면 예도와 결합할 수 있다.

#선(仙)을 어디에 둘 것인가

은 현도의 핵심 언어다. 신도, 도교, 음양오행, 풍수, 산악 수행, 장생, 은둔자 전승이 여기에 모인다.

다만 도 자동으로 진(眞)만 뜻하지 않는다. 자연의 흐름을 존중하면 진이지만, 인간의 고통을 하찮은 것으로 보면 마가 된다.

접점이유
현도 / 진산, 별, 영맥, 카미, 요마를 하나의 흐름으로 본다.
현도 / 마자연을 약육강식으로만 읽고, 인간 윤리를 버린다.
예도 / 충좋은 때와 좋은 땅으로 질서를 안정시키려는 풍수·음양의 정치적 사용.
공도 / 자산악 고행과 신불습합을 통해 고통을 통과한다.
무심세속의 이름을 떠난 은둔자. 아직 깨달음인지 회피인지 불분명하다.

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의 도리가 자연의 흐름과 충돌할 때, 어느 쪽을 따를 것인가."


#같은 행동, 다른 심

요마를 벤다.

같은 행동의 내면
"주군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벤다."
"내 질서 밖의 존재이므로 제거한다."
"더 큰 고통을 막기 위해, 미워하지 않고 벤다."
"살아도 고통, 죽어도 고통. 차이는 없다."
"이 요마도 흐름의 일부였으나, 지금은 균형을 해친다."
"강한 쪽이 살아남는다."
무심"벨 뿐이다."

삼도육심은 행동을 제한하지 않는다. 같은 행동을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묻는다.


#심전 장면을 만드는 법

심전은 마음의 이동이다. 갑작스러운 선언보다 장면이 필요하다.

#충에서 패

질서를 지키기 위해 한 번 예외를 만든다. 그 예외가 다음 명령의 기준이 된다. 어느 날 자신이 지키려던 질서가 사람을 짓누르고 있음을 본다.

장면 물건: 피 묻은 명령서, 불탄 마을의 가문 문장, 부하의 "명령대로 했습니다."

#자에서 허

기도가 닿지 않는다. 구한 사람이 다시 죽는다. 용서한 적이 더 큰 참사를 만든다. 자비는 유지되기보다 닳아 간다.

장면 물건: 이름이 너무 많은 위패, 꺼진 호마 불, 손때 묻은 염주.

#진에서 마

자연을 받아들이던 마음이 자연의 잔혹함만 보게 된다. 요마가 인간을 먹는 것도, 인간이 짐승을 먹는 것도 같다고 말한다.

장면 물건: 뼈가 걸린 신목, 피 묻은 산길, 웃는 텐구의 깃.

#무심에서 길로

아무것도 섬기지 않던 자가 어떤 이름을 부른다. 어떤 죽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어떤 약속을 해 버린다.

장면 물건: 받은 적 없던 편지, 처음 지킨 무덤, 돌려주지 못한 칼.


#삼도심경으로 보는 심전 대사

전환대사
충 → 패"질서를 위해서라면, 질서 밖의 자를 남겨 둘 수 없다."
패 → 충"내가 세운 질서가 주군의 이름을 더럽혔다."
자 → 허"더 구할 수 없다면, 더 태어나지 않게 하는 수밖에."
허 → 자"이 한 사람만은, 아직 보낼 수 없습니다."
진 → 마"산은 사과하지 않는다. 나도 사과하지 않겠다."
마 → 진"먹는 것과 파괴하는 것은 같지 않았다."
무심 → 충"이 이름만큼은 버리지 않겠습니다."
무심 → 자"이 아이의 울음은 지나칠 수 없습니다."
무심 → 진"처음으로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들었습니다."

#GM 원칙

삼도육심 해석은 플레이어를 벌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좋은 사용법은 다음과 같다.

  • 선택 뒤에 붙는 질문으로 쓴다.
  • NPC가 PC를 설득하는 언어로 쓴다.
  • 전환을 제안할 때는 장면과 증거를 함께 제시한다.
  • 플레이어가 자기 캐릭터의 마음을 더 잘 말하게 돕는다.

나쁜 사용법은 "너는 충이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삼도육심은 행동의 족쇄가 아니라, 행동 뒤의 마음을 읽는 지도다.


심은 고정된 문장이 아니라, 다음 장면에서 다시 쓰이는 서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