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1. 사무라이 — 칼을 아침마다 닦는 자
사무라이는 칼이 아니라 예의로 정의된다.
#아침
그는 동트기 한 각(刻) 전에 일어난다. 이 시대의 한 각 은 지금의 약 두 시간 — 하루를 열두 각으로 나눈 단위. 동트기 한 각 전이면 여름엔 새벽 네시경, 겨울엔 다섯시 경. (단위는 fc02-00-02-terms.md 참조.)
밖은 어둡다. 그는 어둠 속에서 세안한다. 찬 물에 얼굴을 댄다. 이 찬 물이 그의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다. 계절 없이 같다 — 겨울엔 물이 얼어 있으면 그대로 얼음을 깬다.
세안 후 그는 신단(神棚) 에 절한다. 작은 거울, 작은 곡옥, 조상의 위패. 짧게 기도한다. 주군의 안녕, 그 다음 가문의 안녕, 마지막으로 자기의 무사함. 순서가 정해져 있다.
그 다음 — 칼.
#칼을 닦는다
사무라이의 하루는 칼을 닦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제 저녁에 이미 닦았다면, 오늘 아침에도 닦는다. 매일 닦는다. 녹이 슬어서가 아니다. 칼이 자신이기 때문.
"칼은 사무라이의 혼" — 이 말은 진부해 보이지만 매일의 행위 속에서만 진실해진다. 닦는 동안 그는 자기 자신을 닦는다. 어제 베인 살이 있었다면, 그 살의 기름이 아직 칼날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것을 손끝으로 느끼며 천으로 닦아낸다.
그러고 나서 그는 칼을 소리 없이 칼집에 넣는다. 탁 하는 소리가 들리면 아직 미숙한 것이다.
#낮
#무엇을 하는가
전국시대 사무라이의 낮은 성(城) 근처 에서 지나간다.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 주군의 성에서 근무 — 경비, 문서 작성, 병사 훈련 지도, 영지 순찰. 관료 비슷한 일도 많다.
- 자기 저택에서 독서 — 공자(孔子), 손자(孫子) 병법. 사무라이는 의외로 글을 많이 읽는다. 읽지 않는 자는 조롱받는다.
- 훈련 — 검술, 활, 창.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대개 가문에 전해지는 가전(家伝)의 형(型)을 익히고, 이따금 떠돌아온 타류(他流)의 무사와 타류시합(他流試合) 으로 실전을 맛본다. ("도장(道場)"의 체계적 운영은 훗날 에도시대에 꽃핀다.)
- 다도 · 와카(和歌) — 상급 사무라이일수록 이쪽을 중시한다. 칼만 잘 쓰는 자는 "시골 무사(田舎武士)" 라는 비웃음을 듣는다.
#녹봉 (祿)
사무라이의 생계는 녹봉으로 결정된다. 주군이 "얼마만큼의 쌀"을 주는가. 석고(石高) 라는 단위로 말한다. 일 년에 쌀 몇 석(石)이냐.
상급 사무라이는 수천 석. 중급은 수백 석. 하급은 50~100석. 아시가루 격상급의 최하급은 20~30석 — 가족만 겨우 먹인다. 중급 사무라이(이삼백 석)가 되면 몇 명의 가솔(家従·하인)을 거느린다.
녹봉이 떨어지는 것은 치욕이다. 그러나 치욕보다 무서운 것은 녹봉이 끊기는 것 — 주군이 망하거나, 자기가 실수하면 벌어지는 일. 녹봉 끊긴 사무라이는 낭인(浪人) 이 된다. 그는 이제 떠돌이다.
#저녁
낮 근무가 끝나면 그는 집에 돌아간다. 아내가 기다린다. 미소시루(味噌汁·된장국) 와 보리밥 과 채소 몇 가지.
때로 술. 술은 가벼운 나무 사기에 담겨 나온다. 한두 잔.
저녁 식사 후 그는 책을 편다. 또는 붓을 잡는다 — 오늘의 일을 일기에 적는다. 주군의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고 쓰는 것이 예의. 그는 "어제의 일"을 기록할 때도 "어제"라고 쓰지 "주군께서 어제"라고 쓰지 않는다. 주군의 이름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와카 (和歌)
그의 서탁에는 종이가 있고, 붓이 있다. 그는 31음의 시 를 쓴다. 와카다.
와카는 사무라이의 교양이지만, 전장에 나가기 전 에 마지막으로 쓰는 것이기도 하다. 전장에서 죽는다면 — 이 종이가 유서다. 아내에게, 자식에게, 주군에게.
"살아 돌아오지 못하면, 이 종이를 불태우지 마라. 이것이 나다."
와카의 내용은 대개 꽃이거나 달이거나 이슬이다. 죽음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읽는 자는 안다. 꽃은 져도 향기만은 남기를 — 이 한 줄이 유서다.
#주군과 가문
사무라이의 삶을 꿰뚫는 두 축은 주군과 가문이다.
#주군 (主君)
그가 충성을 바치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명령에 절대 복종. 명령이 옳지 않다 여겨지면 — 아주 정중하게 간언한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그대로 따른다. 따르지 않으려면 할복한다. 중간은 없다.
주군이 망하면 — 어떻게 할 것인가? 전국시대의 답은 대개 낭인이 되어 다른 주군을 찾는 것 이다. 주군과 함께 전장에서 죽은 사무라이도 많지만, 평시에 주군을 따라 자결하는 "순사(殉死)" 는 이 시대엔 드물다. (순사를 의례적 미덕으로 제도화한 것은 훗날 에도 초기의 일.) 낭인이 되면 — "저자는 주군이 죽을 때 살아남았다" 는 소문이 따라붙는다. 그 소문을 넘어서는 새 녹봉을 얻으려면 실력과 운이 둘 다 있어야 한다.
#가문 (家門)
사무라이는 자기 혼자가 아니다. 조상의 이름을 이어받은 자. 그의 결정은 조상에게도 자손에게도 영향을 준다. 이것이 무사의 무게 다.
가문이 무너지면 — 그가 세상에 존재했던 기록이 사라진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럽다. 조심스러움이 지나쳐 비겁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의 조심스러움은 자기 목숨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조상과 자손에 대한 책임이다.
#전장에 나서는 날
#마지막 아침
출전하는 날 아침, 그의 아침은 평소와 똑같다. 그것이 중요하다.
평소와 다르게 하면 —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인정이 된다. 그는 인정하지 않는다. 평소처럼 세안하고, 평소처럼 신단에 절하고, 평소처럼 칼을 닦는다.
단 한 가지 다른 것 — 그는 오늘 지세이(辞世·じせい)의 구(句) 를 쓴다. 살아 돌아올 것이지만, 혹시를 대비한다. "세상을 떠나는 말". 와카 한 수.
"꽃은 져도 / 향기만은 남기를 / 이 아침의 / 마지막 바람이 / 누구에게 닿든"
이 종이를 서탁 위에 놓고, 갑옷을 입는다. 아내가 말없이 그를 바라본다. 말하면 이 하루가 무너진다. 그녀도 안다.
#그런데 이 시대 사무라이에게 더 있는 것
영계가 열린 이 시대에, 사무라이는 요마와도 싸워야 한다.
그의 칼은 많은 요마에게 통하지만, 영적인 적이나 비실체에 가까운 적 앞에서는 부족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는 퇴마 기법을 익히거나, 퇴마승의 부적을 칼자루에 묶거나, 신기(神器) 를 얻으려 애쓴다.
그리고 — 그는 이상한 친구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음양사, 승려, 무녀. 옛날 사무라이라면 교류하지 않았을 자들. 지금은 전장의 동료다. 그들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
가끔 그는 밤에 이 변화를 생각한다. 그의 할아버지는 사무라이끼리만 싸웠다. 그의 아버지도. 그의 세대에 와서야 부적과 염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영이 그의 꿈에 나타나 말한다 —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는 깨어 천장을 본다. 어둠 속에서 대답한다 — "살아남으려 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한 문장으로
사무라이는 매일 칼을 닦는다. 녹이 슬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흐려지지 않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