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라노 키요모리 (平清盛)
Fiction-Only + Canon (fc04 내부 한정). 본 문서의 인물 시트는 fc04 내부 한정 Canon. 키요모리는 인간이며 요마가 아니다 — 본 권의 전쟁 원칙(인간의 정치 분쟁) 이 가장 강하게 적용되는 인물.
#도입 단편 — 붉은 깃발의 그림자
키요모리는 달을 좋아했다. 달빛 아래에서는 붉은 깃발도 검게 보였기 때문이다. 검게 보이면 피도, 영화도, 죄도 잠시 같은 색이 되었다.
젊은 가신이 물었다. "주군, 달이 차면 가문도 찬다고들 합니다."
키요모리는 술잔을 들었다. "보름달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면 두렵지 않으십니까?"
그는 웃었다. "두려움은 낮은 자의 사치다. 높은 곳에 오르면, 두려워할 시간도 남에게 맡겨야 한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바다 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올라왔다. 깃발이 한 번 크게 흔들렸고, 달빛 아래 그 그림자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키요모리는 천하가 손에 들어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바다는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모든 것을 돌려받는 곳이었다. 그 사실을 아직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향 — 보름달 같은 영화, 한 호흡의 종말
지쇼(治承) 5년 봄. 후쿠하라의 어느 거처. 한 노인이 침상에 누워 있다. 노인은 끓는 듯 뜨겁다. 사람들이 차가운 물을 그의 몸에 부어 보려 하지만 물이 닿는 순간 김이 되어 사라진다. 그가 헛소리를 한다.
「요리토모의 머리를… 가져오라. 내 무덤 앞에 그것을… 놓아 다오. 다른 공양은 필요 없다…」
이것이 그가 자식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며칠 후 그가 죽는다. 사후 그의 시신을 화장한 자리에 검은 자국이 남았고, 그 자국이 일 년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 후세의 헤이케모노가타리가 그렇게 적었다.
그가 죽고 4년 후, 단노우라의 바다에서 헤이케 일족이 가라앉는다. 어린 안토쿠 천황이 할머니 품에 안겨 「어디로 가나요」 묻자 할머니가 답한다 — 「바다 밑에도 도읍이 있단다」.
이것이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끝이다. 무가 최초로 태정대신에 올랐던 자, 「헤이케 아닌 자는 사람도 아니라」 던 영화의 정점에 있던 자, 자기 가문이 한 세대 만에 멸망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은 자.
#핵심 데이터
| 항목 | 값 |
|---|---|
| 이름 | 타이라노 키요모리 (平清盛) |
| 생몰 | 1118~1181 (64세) |
| 시대 | 헤이안 말 (고시라카와 천황·인세이 시대) |
| 무가 | 헤이케(平家) 적류 — 이세 헤이씨 |
| 부친 | 타이라노 타다모리(忠盛) — 일설로는 시라카와 법황의 외자 |
| 관위 | 태정대신(太政大臣) — 1167년 무가 최초 |
| 사망 | 1181년 윤 2월. 후쿠하라에서 열병 |
| 사후 | 4년 후 단노우라(1185)에서 헤이케 멸망 |
#생애 — 무가의 정점에 오른 자
#호겐의 난 (1156)
천황가가 둘로 갈라졌고, 후지와라가 둘로 갈라졌다. 그 결정자는 무가였다. 키요모리는 미나모토노 요시토모(義朝) 와 함께 후백하 측에 가담해 승리.
이 난의 결과로 무가가 처음으로 정치 결정의 주체가 됐다. 헤이안 말 무사 부상의 분기점이다. 자세한 시간선은 fc04-01-03-warrior-dawn.md.
#헤이지의 난 (1159)
호겐 후 3년. 미나모토노 요시토모가 후지와라노 노부요리와 결탁해 거병. 키요모리가 진압. 요시토모는 도주 중 살해되었고 그의 셋째 아들 요리토모는 어린 나이로 살아남아 이즈에 유배되었다 — 이것이 26년 후 헤이케를 멸하는 자다.
이 난의 결과로 키요모리가 단독 무가 권력자가 됐다. 미나모토 가문은 거의 전멸했다.
#외척 정치 — 딸 토쿠코
키요모리는 자기 딸 토쿠코(徳子) 를 다카쿠라 천황(高倉天皇)에게 시집보냈다. 1178년 토쿠코가 황자(후의 안토쿠 천황) 를 낳았고, 1180년 안토쿠가 천황으로 즉위했다 — 키요모리는 천황의 외조부가 됐다. 후지와라 가문이 헤이안 내내 해 온 외척 정치를 무가 출신으로 재현한 것이다.
#「헤이케 아닌 자는 사람도 아니라」
헤이케 일족 영화의 정점. 도성의 모든 고관 자리가 헤이케로 채워졌다. 「헤이케 아닌 자는 사람도 아니라」 — 헤이케의 한 가신이 한 말로 전해지는 이 한 줄이 헤이케 정점기의 자기인식이다.
후지와라 가문의 자리에 무가가 올랐다 — 헤이안 내내 유지되던 「공가 ≫ 무가」 의 균형이 무너진 시점. 자세한 것은 fc04-01-02-kuge-buke.md.
#반(反) 헤이케 운동
균형이 깨지자 반발이 시작됐다. 1177년 시시가타니의 음모(법황 측의 헤이케 타도 계획). 1180년 모치히토 친왕의 거병. 같은 해 후쿠하라 천도 — 키요모리가 도성을 후쿠하라(現 효고)로 옮겼으나 6개월 만에 좌절하고 교토로 회귀.
같은 해(1180) 이즈에서 요리토모가 거병했고, 미나모토 일족이 전국에서 호응. 겐페이 전쟁의 시작이다.
#1181 키요모리 사망
지쇼 5년 윤 2월. 키요모리가 후쿠하라에서 갑자기 발병. 열병으로 발광하다가 며칠 만에 사망. 64세. 헤이케모노가타리는 그가 사찰을 불태운 응보로 죽었다고 적었다 — 그가 1180년 도다이지(東大寺) 를 비롯한 나라의 사찰들을 불태운 사건이 있었다.
#사후 — 4년 만의 헤이케 멸망
키요모리 사후 헤이케는 빠르게 무너졌다. 그의 후계자 시게모리(重盛) 가 그보다 먼저 1179년 죽었기에 적당한 후계자가 없었다 — 키요모리의 카리스마가 사라진 뒤 헤이케는 분열했다.
주에이 4년/겐랴쿠 2년 3월 24일, 양력 1185년 4월 25일. 단노우라(壇ノ浦)의 바다에서 헤이케 일족이 가라앉았다. 어린 안토쿠 천황(8세)을 할머니(키요모리의 아내, 토키코)가 품에 안고 바다에 뛰어든 장면이 헤이케모노가타리의 정점이다.
#영적 측면 — 본 권의 처리
#키요모리 본인 = 인간. 요마 아님
본 권의 전쟁 원칙이 가장 강하게 적용되는 인물이다. 키요모리는 인간이고, 그의 영화도 그의 종말도 모두 인간의 동기로 설명된다.
#헤이케 멸망 후의 영적 잔향
그러나 결과는 다르다. 단노우라에서 가라앉은 헤이케 일족은:
- 세토 내해의 원령 — 헤이케 일족의 한이 머문 바다.
- 헤이케가니(平家蟹) 전설 — 헤이케 무사의 얼굴이 등껍질에 남았다는 게.
- 헤이케 안토쿠 천황의 영 — 어린 천황이 가라앉은 자리에 머물다.
- 단노우라의 「헤이케가니(平家蟹)」 전설 — 후세 변형.
이 영적 잔향은 본 권에서 다루지 않고 후속 권으로 이어진다 — 「전쟁의 결과로서의 영적 발현」 이라는 본 권 원칙대로.
#이쓰쿠시마 신사
키요모리는 평생 이쓰쿠시마 신사(厳島神社, 히로시마) 를 깊이 신앙했다. 신사를 그의 후원으로 대규모 정비했고, 평생 그곳을 자신의 수호 신사로 여겼다. 이쓰쿠시마의 신은 fc01-02-03-chushin.md 의 중신(3단)에 등재된다 — 「이쓰쿠시마 묘진(厳島明神)」.
키요모리와 이쓰쿠시마 묘진의 관계는 본 권에서 짧게 다루되, 「신성과의 관계가 인물의 정치적 정당성을 보강한다」 는 한 줄 정도로. 자세한 신사 데이터는 fc01 의 텐진 시트와 같은 방식 — fc01 본 권 그대로 사용, 본 권은 새 시트를 만들지 않는다.
#후속 권으로
키요모리 사후 영적 잔향은 fc05 (에도) · fc02 (전국) 로 이어진다. 본 권은 키요모리 본인까지만 다룬다.
#인물 시트 (Canon — fc04 내부 한정)
Canon (fc04 내부 한정). 키요모리 정점기 (1167년경 태정대신 시기) 기준.
타이라노 키요모리 — 본직 사무라이 10단 + 위명
전력: 7 (3 + 체3 + 강인1)
방비: 16 (오요로이 + 태정대신 격식)
활력: 13 (10 + 기3)
능력치: 통+3, 용+3, 기+3, 미+2, 운+2, 체+3, 지+1
유파: 이세 헤이씨 가전 (자체 면허 + 비기)
지배력 기여: +6 (분대 + 정치)
#주요 특기
- 야부사메 (사무라이 1단)
- 궁마의 도 (사무라이 5단)
- 결단 (사무라이 9단) — 1 회/세션 분대원 즉시 회복
- 외척 정치 (자체 비기) — 정치 판정 +3, 천황 측근 자동 인맥
- 태정대신의 위세 (위명) — 부하 NPC 의 다음 행동 +1 명중·회피
#시그니처 — 태정대신의 위세
| 기법 | 유형 | 활력 | 한계 | 효과 |
|---|---|---|---|---|
| 태정대신의 위세 | 전술:형 | 활력 5 | 1 회/세션 | 키요모리가 명령한 모든 부하 NPC 의 다음 1 호흡 행동에 +1 명중·+1 회피. 광역. ([전술:형] 정의는 co-03-07 § 2.5 분대 전술 표기) |
| 외척의 명령 | 정비 | 활력 3 | 1 회/시나리오 | 천황·후지와라 측 NPC 1명에게 명령 또는 청원. GM 재량. 시나리오 결정점 우회 가능. |
| 명도 「코카라스마루(小烏丸)」 | 형 (용) | 활력 3 | — | 헤이씨 가전의 명도. 2d10+용+검술 ≥ 방비. 명중 시 2전력. |
#시나리오 활용
#호겐의 난·헤이지의 난 시기 PC
PC 가 키요모리 측 또는 미나모토 측 무사로 등장. 본직 사무라이 5~7단 권장. 인간 정치 분쟁 — 요마는 등장하지 않는다. PC 가 활약할 자리는 검과 활, 그리고 정치적 결단.
#키요모리 정점기 PC
1167~1180 사이. PC 가 궁정의 음모 속 정보원 또는 헤이케 방계 무사. 시시가타니 음모·후쿠하라 천도 같은 사건이 시나리오 무대. 반(反) 헤이케 운동의 단서를 PC 가 발견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잘 어울린다.
#임종기 PC
1180~1185 사이. PC 가 헤이케의 마지막을 지키는 자. 단노우라까지 — 이는 비극 시나리오다. 캠페인의 종결 시나리오로 강력하다. 자세한 단노우라 묘사는 fc04-99-00-closing.md.
#키요모리와 싸우려면 / 모시려면
#키요모리와 싸우려면
본 권의 가장 강력한 인간 NPC. 정점기(1167년경) 의 키요모리는 정공으로 거의 격파 불가. 다음 경로 중 하나가 필요:
- 정치적 균열 활용 — 시시가타니 음모처럼 헤이케 내 또는 법황 측의 균열을 활용.
- 직접 결투 회피 — 키요모리 본인은 가급적 만나지 않고 시게모리·무네모리 등 후계자를 통해 접근.
- 시간 — 키요모리는 1181년에 자연사한다. PC 가 그 시점까지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키요모리를 모시려면
본직 사무라이 PC 가 헤이케 가신이 되는 시나리오. 조건:
- 본직 사무라이 — 다른 직업은 헤이케 가신단에 들어가기 어렵다.
- 이세·아키 출신 — 또는 이주 후 가신단 인척 결연.
- 무공 증명 — 호겐·헤이지의 난에서 활약.
성공 시: PC 는 헤이케 가신이 된다. 단 1185년 단노우라까지의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 비극이 예고된 영입.
#톤 — 제행무상의 종소리
헤이케모노가타리는 다음 한 단락으로 시작한다 — 헤이안 말 시기의 자기인식이며 키요모리의 운명을 예고한 도입부다.
「祇園精舎の鐘の声、諸行無常の響きあり。
沙羅双樹の花の色、盛者必衰の理をあらはす。」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종소리, 사라쌍수(沙羅双樹)의 꽃 빛이 — 영화필쇠(盛者必衰)의 도(道)를 드러낸다.」
영화의 정점에서 돌연한 종말. 한 인간이 세운 영화가 한 세대도 못 가 멸망하는 시대. 키요모리의 시트는 강력하지만 — 강력함이 반드시 종말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 본 인물의 핵심 비극이다.
#한 줄로
「살아서 태정대신까지 올랐고, 죽어서 한 세대도 못 가는 영화의 그림자가 됐다.」
#참조
#co — 직업·시나리오·영령
co-04-character/co-04-07-classes/co-04-07-01-samurai.md— 사무라이co-09-adventures/co-09-09-minamoto-specter.md— 요시츠네 영령 시나리오 (1189 사망. 헤이케를 멸한 자의 후세 재등장)co-04-character/co-04-08-samples/co-04-08-22-heroic-spirit-catalog.md— 영령 카탈로그 (벤케이 6단 — 요시츠네와 동반)
#fc04 내
fc04-01-02-kuge-buke.md— 공가 자리에 오른 무가fc04-01-03-warrior-dawn.md— 무사 부상 시간선fc04-99-00-closing.md— 단노우라 — 헤이안 종막
#fc 다른 권
fc01-02-03-chushin.md— 중신 (이쓰쿠시마 묘진)fc02-01-02-war.md— 전국 전쟁 (대비)fc03-99-01-kenshi-roster.md— 검호 명부 (요시츠네·벤케이 — 헤이케를 멸한 자들)
#외부 문헌
-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
보름달도 기울고, 붉은 깃발도 물결 아래로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