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의 첫 박자
zn01 권말 소설 · 진지도 ★☆ · 순수 향(픽션). 규칙·수치는 나오지 않는다.
손이 떨렸다. 비파를 안은 두 손이.
"오토와! 이 녀석이 또 어디서 죽상을 하고 있어!"
강가의 가설 무대 뒤편, 거적 사이로 늙은 흥행주 단조 영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어왔다. 영감은 머리는 다 벗어지고 눈썹만 흰 풀숲처럼 무성한, 키보다 입이 두 배는 큰 사람이었다. 좌(座)를 사십 년 끌고 다닌 손인데, 정작 본인은 비파 줄 하나 제대로 못 튕긴다.
"영감님, 저 못 해요."
"뭐라고?"
"손이 떨려서요. 보세요." 나는 손을 내밀었다. 정말로 나뭇잎처럼 떨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저렇게 많이 올 줄 몰랐단 말이에요."
단조 영감이 거적을 들치고 강가를 한 번 슬쩍 내다보더니, 다시 들어와 헤벌쭉 웃었다.
"많긴. 한 스무 명 왔겠다."
"……방금 영감님이 직접 세더니 일흔하나라면서요."
"그건 손님 끌려고 한 소리고."
나는 그만 주저앉을 뻔했다.
오토와. 그게 내 이름이다. 강 소리 같다고 떠돌이 비파법사 노스님이 붙여 줬다. 그 노스님 손에서 비파를 배운 지 삼 년, 줄 고르는 법부터 헤이케의 한 대목까지 겨우겨우 익혔는데, 노스님은 작년 겨울 눈길에서 잠들 듯 가 버렸다. 남은 건 닳은 비파 한 자루와, 나를 거둬 준 이 시끄러운 영감 하나.
"오토와야." 영감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흰 눈썹이 무겁게 처졌다. "네 스승이 마지막에 뭐랬는 줄 아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은 손이 좋아. 무대만 무서워하지.' 그러고는 픽 웃더라. 어이구, 정확하게도 맞혔지 뭐냐."
영감이 내 등을 철썩 때렸다. 가벼운데 우렁찼다.
"무서운 게 당연한 거다. 안 무서운 놈이 오히려 줄을 못 울려. 손 떠는 거, 그거 네 몸이 '나 지금 진심이다' 하고 떠드는 거야. 그러니까 그 떨림을 줄에다 실어. 알겠냐?"
"……모르겠는데요."
"나도 몰라. 그냥 나가서 한 줄 튕겨 봐."
그게 격려라고.
거적이 걷혔다.
강물 냄새, 노점의 떡 굽는 냄새, 사람들의 웅성거림. 시조 강가의 봄 저녁이 통째로 내 앞에 펼쳐졌다. 정말로 사람이 많았다. 일흔하나든 스무 명이든, 내 눈엔 그냥 새카만 한 덩어리였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대 한가운데 작은 방석. 거기까지가 백 리 길 같았다.
저 앞 어디선가 단조 영감이 부채를 쫙 펴고 외쳤다. "자아—! 떠돌이 비파의 마지막 제자, 강의 딸 오토와! 헤이케의 한 대목을 들려 드리겠소—!"
박수도 안 나왔다. 누구 하나 이 어린 계집애한테 기대 같은 거 안 했다. 그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시킬 것도 없으니까.
나는 방석에 앉아 비파를 무릎에 세웠다. 손이 아직도 떨렸다. 영감 말대로 — 이 떨림을, 줄에다.
첫 줄을 튕겼다.
둥— 하고 낮은 소리 하나가 강 위로 번졌다. 떨리는 손 때문에 음이 살짝 흔들렸는데, 그 흔들림이 오히려 물결처럼 들렸다. 웅성거림이 한 뼘 잦아들었다.
나는 둘째 줄을 튕겼다. 셋째 줄을. 노스님이 눈 감고도 짚던 그 자리들을, 내 손가락이 저 혼자 찾아갔다. 목소리가 나왔다. 처음엔 모깃소리처럼, 그다음엔 강물처럼.
"……기온정사(祇園精舎)의 종소리, 제행무상의 울림이라—"
새카맣던 한 덩어리가 사람의 얼굴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떡을 든 채 멈춘 아이, 입을 벌린 짐꾼, 눈가를 훔치는 늙은 아낙. 그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내 비파를 듣고 있었다.
무서운 게 아니었다. 이건 — 따뜻했다.
마지막 줄을 길게 튕기고 손을 멈췄을 때, 강가가 잠깐 조용했다. 한 박자. 두 박자.
그리고 터졌다.
함성이 강물보다 크게 밀려왔다. 누군가 동전을 던졌다. 챙그랑, 챙그랑, 발치에 떨어지는 소리. "한 곡 더! 한 곡 더!" 떡 든 아이가 폴짝폴짝 뛰었다.
무대 옆에서 단조 영감이 부채로 코를 팽 풀고 있었다. 흰 눈썹 아래 눈이 시뻘겠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영감은 황급히 헛기침을 하더니, 입만 뻥긋 움직였다.
— 봐라. 떨었잖냐.
나는 웃음이 터졌다. 떨리던 손으로 다시 첫 줄을 짚으며, 이번엔 떨림 없이 튕겼다.
둥—.
강물이 받아 주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