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v1.3.3 · zn-doc

#카무이의 손님

zn06 권말 소설 · 진지도 ★★★ · 순수 향(픽션). 규칙·수치는 나오지 않는다.

카무이의 손님 시작 삽화

눈이 사람을 죽이려 들 때가 있다.

지로베에는 그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사이 고개를 넘으면 사흘 길이 하루로 준다던 말은, 눈이 내리지 않는 계절의 말이었다. 바람이 위에서 아래로, 옆에서 안으로 들이쳤다. 길은 진작 사라졌다. 발이 어디를 딛는지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없었다. 짚신은 얼음덩어리가 되었고, 손가락은 남의 것처럼 멀어졌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일어서려다, 다시 꿇었다.

여기서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름도 모르는 산에서. 누구도 찾지 못할 곳에서.

그때 흰 어둠 속에 노란 점 하나가 떠올랐다. 불빛이었다.


카무이의 손님 중간 삽화

문을 연 것은 젊은 사내였다. 지로베에보다 머리 하나는 컸고, 수염이 짙었으며, 눈매가 깊었다. 사내는 문 앞에 쓰러진 그를 한참 내려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팔을 잡아 안으로 끌어들였다.

집 한가운데 네모진 화로가 타고 있었다. 사내는 지로베에를 그 곁에 앉히고, 젖은 겉옷을 벗겨 시렁에 걸었다. 손놀림이 익숙했다. 이런 손님을 처음 받는 게 아니라는 듯이.

"……고맙소."

지로베에가 떨리는 입으로 말했다. 사내는 알아듣지 못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러고는 자기 가슴을 짚으며 한 마디를 했다. 지로베에가 모르는 말이었다. 부드럽고, 둥근, 노래 같은 말.

이름인 모양이었다. 지로베에도 제 가슴을 짚었다. "지로베에." 사내가 그 말을 천천히 따라 했다. 발음이 어긋났지만, 분명히 그의 이름이었다.

말은 거기서 끊겼다. 두 사람은 더 나눌 말이 없었다.


사내가 화로에 무언가를 올렸다. 마른 물고기와, 이름 모를 뿌리와, 김이 오르는 국물. 그릇에 담아 지로베에에게 내밀었다.

따뜻한 것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몸이 떨려 왔다. 추워서가 아니었다. 살았다는 것이 그제야 몸으로 느껴진 것이다. 지로베에는 고개를 숙였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사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내는 자기 그릇을 먹기 전, 국물을 조금 떠서 화로의 불 위에 가만히 부었다. 치익, 하고 작은 소리가 났다.

지로베에는 그 손짓을 보았다. 불에게 먼저 먹이는 것이다. 야마토에도 부뚜막 신이 있으니, 그 뜻이 짐작은 갔다. 다만 사내의 손길에는 무언가 더 있었다. 불을, 그저 불로 대하지 않는 무엇이.

사내가 불을 가리켰다. 그리고 입으로 한 마디를 했다. "카무이."

"카무이." 지로베에가 따라 했다.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손으로 집의 들보를 가리켰다. "카무이." 처마 밖의 어둠을 가리켰다. "카무이." 마지막으로 지로베에를 가리켰다 — 잠시 멈칫하더니, 자기 자신도 함께 가리켰다. 그 손짓에 옅은 웃음이 묻어 있었다.

지로베에는 알 듯 말 듯 했다. 불도, 집도, 산도, 사람도 — 다 같은 그 말이라는 것. 신이라기엔 너무 가깝고, 이웃이라기엔 너무 큰 무엇.

그러니까 자기도, 오늘 밤 이 집에 든 한 손님이라는 것.


밤이 깊자 사내가 낮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운율이 있었다. 같은 가락이 길게 돌고 돌았다. 무슨 뜻인지 지로베에는 한 마디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 노래는 그를 붙들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려는 노래가 아니었다. 불에게, 들보에게, 어둠 너머의 산에게 — 그 모든 카무이에게 바치는 노래 같았다. 한 사람이 자기 세계 전부에게 건네는 인사 같았다.

지로베에는 화로의 빛을 받은 사내의 옆얼굴을 보았다. 깊은 눈매에 불그림자가 일렁였다.

문득 외로워 보였다. 이 골짜기에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사내가 죽으면 이 노래도 함께 갈까. 그런 생각이 까닭 없이 들었고, 지로베에는 그 생각이 슬펐다.

노래가 끝났다. 사내가 그를 보고 살짝 웃었다. 자라는 손짓을 했다.


카무이의 손님 마무리 삽화

새벽에 눈은 그쳐 있었다.

세상이 온통 희고 고요했다. 사내가 문 앞까지 따라 나와, 갈 길을 손으로 가리켜 주었다. 고개 너머, 마을이 있는 쪽.

지로베에는 무엇이라도 주고 싶었다. 봇짐을 뒤졌으나 변변한 것이 없었다. 결국 허리에 찬 작은 칼을 풀어 두 손으로 내밀었다. 받으라고. 사내는 한참 그것을 보더니, 받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대신 지로베에의 손을 제 손으로 가만히 감싸, 칼을 도로 그의 품에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화로 쪽을 가리켰다. 어젯밤 불에 국물을 붓던 그 손짓을, 다시 한 번.

지로베에는 알았다. 받은 것은 갚는 게 아니라, 다음 손님에게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너도 언젠가 문 앞에 쓰러진 누군가를 들이라고. 그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로베에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더 깊이, 자기 평생 누구에게도 숙여 본 적 없을 만큼 깊이.

눈길을 걸어 내려가다 한 번 돌아보았다. 사내는 여전히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작은 노란 불빛을 등지고서.

지로베에는 그의 이름을 끝내 옳게 발음하지 못했다. 하지만 평생, 잊지 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