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v1.3.3 · zn-doc

#노래 내기

zn07 권말 소설 · 진지도 ★☆ · 순수 향(픽션). 규칙·수치는 나오지 않는다.

노래 내기 시작 삽화

오노 사다요는 진다. 오늘도, 한 음 차이로.

"가을 들녘에 — 외로이 선 — 한 그루." 판자(判者) 노릇을 맡은 노승이 부채로 무릎을 톡톡 쳤다. "셋째 구가 한 음 모자라네. 사다요, 자네 또 손가락을 안 꼽았지."

"꼽았습니다! 다섯, 일곱, 다섯, 분명 다섯이었는데—"

"넷일세."

맞은편에 앉은 계집애가 소매로 입을 가렸다. 가렸다고 웃음이 안 새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어깨가 들썩이는 게 다 보였다.

"치요. 웃지 마라."

"안 웃었거든요." 치요는 또 웃었다. "사다요 도련님은 마음은 다섯인데 손가락이 넷이라서 그래요. 늘 한 음씩 모자라잖아요."

이 자리는 한 달에 한 번 마을 신사 마루에서 열리는 노래 내기였다. 같은 제(題)를 받아 둘이 한 수씩 짓고, 노승이 우열을 매긴다. 그리고 그 우열은 — 사다요가 세기로는 — 열두 달 내내 치요 쪽으로만 기울었다.

치요는 비단 장수의 딸이고, 사다요는 몰락한 무가의 아들이다. 둘 다 와카밖에 자랑할 게 없는데, 한쪽만 잘한다. 분할 노릇이다.

"오늘 제(題)는." 노승이 헛기침을 했다. "'기다림'일세."


노래 내기 중간 삽화

사다요는 종이를 노려보았다.

기다림. 쉬운 제다. 너무 쉬워서 어렵다. 가을이라 쓰면 식상하고, 달이라 쓰면 코마치 흉내고, 비라 쓰면 또 한 음 틀릴 것 같고.

곁눈으로 치요를 봤다. 붓끝을 입술에 댄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저럴 때 저 애는 — 아니, 보지 말자. 보면 글자가 안 떠오른다. 일 년째 안 떠오른다.

문득, 손가락이 저절로 다섯을 꼽았다.

기다린다는 / 말은 차마 못 하고 / 가을 한 철 // 네 소매 끝만 / 자꾸 세어 본다네.

써 놓고 사다요는 귀까지 빨개졌다. '네 소매'를 '저 소매'로 고칠까. 아니, '먼 소매'? 그러면 누구 소매인지 안 들킬 텐데. 손가락이 다시 음을 셌다 — '저 소매 끝만'도 다섯이다. 바꿔도 율은 안 깨진다. 안 들킬 수 있다.

…그런데 안 들키면 무슨 소용이람.

노승이 손을 내밀었다. 시간이 끝났다. 사다요는 고친 데 없는 종이를,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은 채로, 그대로 내밀고 말았다.


노승이 둘의 종이를 나란히 폈다. 먼저 치요 것을 읽었다 — 무난하고, 곱고, 한 음도 안 틀린, 늘 이기는 그 솜씨. 그리고 사다요 것을 읽었다.

"…네 소매 끝만 / 자꾸 세어 본다." 노승이 눈썹을 들었다. "허."

치요가 종이를 빼앗듯 끌어다 읽었다. 한 번. 두 번.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이거." 치요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이거 저 놀리는 거죠?"

"뭐?"

"제가 늘 이기니까. '네 소매 끝을 센다'— 제가 이긴 횟수를 센다는 거잖아요. 열두 달 내내 졌다고 비꼬는 거! 그것도 노래로 곱게 포장해서!"

"아니, 그게 아니라—"

"치사해요. 정정당당하게 한 음이나 더 세든가!"

사다요는 입을 뻐끔거렸다. 변명을 하자니 진짜 뜻을 말해야 하고, 진짜 뜻을 말하자니 차라리 한 음 더 틀리고 싶었다. 노승은 부채 뒤에서 어깨를 떨고 있었다.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는 어깨였다.

"치요." 노승이 끼어들었다. "한 수로 시비가 붙었으면, 한 수로 답하는 게 이 자리의 법도다. 답가를 지어 보아라."


노래 내기 마무리 삽화

치요는 약이 올라 붓을 들었다.

세지 마세요 / 진 사람 가슴팍이 / 더 아픈 것을 // …이긴 건 저인데 / 왜 제가 더 떨릴까.

써 놓고 치요는 멈칫했다. 끝의 두 구는 쓸 생각이 없었다. 손이 멋대로 썼다. 지우려고 붓을 들었는데, 노승이 벌써 종이를 채 갔다.

"호오." 노승이 소리 내어 읽었다. "'이긴 건 저인데 / 왜 제가 더 떨릴까.'"

치요의 얼굴이 단풍보다 붉어졌다.

사다요가 그 구절을 입속으로 한 번 따라 읽었다. 다섯, 일곱, 다섯, 일곱, 일곱. 이번엔 손가락을 안 꼽아도 음이 다 맞아떨어졌다. 율이 맞으니 뜻도 또렷이 들어왔다 — 너무 또렷이.

"치요." 사다요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거… '네 소매'의 '네'는, 이긴 횟수가 아니라."

"…알아요." 치요가 종이로 얼굴을 가렸다. 가렸다고 빨개진 게 안 보이는 건 아니었다. "한 음도 안 틀리면서, 일 년이나 못 알아들은 척했잖아요."

"내가 한 음씩 모자라서 그렇지."

"…그럼 오늘은."

사다요가 손가락을 폈다. 다섯을 꼽고, 천천히 여섯째를 마저 꼽았다.

"오늘은 한 음 더 셌어."

노승은 두 종이를 가지런히 포개 놓고는, 우열을 매기지 않았다. 부채로 입을 가리고 마루를 내려갔다. 가을바람에 신사 처마 끝 풍경이 한 번 울었다. 그건 다섯 음도 일곱 음도 아니었지만, 두 사람 다 그 소리를 똑똑히 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