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v1.3.3 · zn-doc

#한 걸음 더

zn09 권말 소설 · 진지도 ★★ · 순수 향(픽션). 규칙·수치는 나오지 않는다.

한 걸음 더 시작 삽화

겨울 산문(山門)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스승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오늘은 안 됩니다, 사부님. 눈이 무릎까지 옵니다."

겐신(玄信) 노사는 대답 대신 짚신 끈을 고쳐 맸다. 손가락 마디가 마른 매화 가지 같았다. 그 손이 한때 사람들을 떨게 했다는 걸, 나는 아직도 믿기 어렵다.

마을에서는 그를 검성(劍聖)이라 불렀다. 나는 그 말이 싫었다. 성(聖)이라는 글자에는 끝이 들어 있으니까. 다 이루었다는 것, 더 갈 데가 없다는 것. 사람들은 전설을 완성된 채로 모셔 두고 싶어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

"눈 오는 날의 발자국이 가장 깊단다." 노사가 일어섰다. 무릎에서 마른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니 오늘이 좋아."

칼을 지팡이처럼 짚고, 그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한 걸음 더 중간 삽화

산길은 사람의 길이 아니었다. 요마(妖魔)의 영(領)이라고 마을 노인들은 부르며 손사래를 쳤다. 보름이면 능선 너머에서 푸른 도깨비불이 줄지어 흐르고, 운 나쁜 나무꾼은 돌아오지 못했다.

"왜 굳이." 눈을 헤치며 내가 물었다. "사부님은 이미 다 이기셨잖습니까. 이름도, 이야기도. 이제 화로 옆에 앉아 계셔도 누가 뭐라 안 합니다."

"이겼지." 그가 숨을 골랐다. 흰 입김이 길게 풀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었어. 검성, 하고."

노사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주름 속 두 눈이, 눈밭의 햇빛보다 맑았다.

"헌데 료(亮)야. 마침표를 찍은 건 그들이지, 내가 아니야. 나는 아직… 어제보다 반 치 더 깊게 칼을 쥐는 법을 모른다."

반 치. 평생을 바쳐 산을 옮긴 사람이, 반 치를 말하고 있었다.


능선 위에서 그것이 우리를 기다렸다.

키는 노송(老松) 둘을 세운 듯하고, 눈을 머금은 안개를 두르고 있었다. 옛 싸움터에서 죽은 무사들의 원념이 엉겨 빚어졌다는 영물. 마을의 가장 오랜 두려움이 거기 서 있었다.

나는 칼을 뽑았고, 손이 떨렸다. 노사는 떨지 않았다. 다만, 웃었다.

"보아라." 그가 속삭였다. 나에게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아직 모르는 게 저렇게나 크다."

그 한마디에, 나는 깨달았다. 그가 평생 멈추지 않은 이유를. 그는 적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다만— 더 알고 싶었던 것이다. 끝까지, 끝난 뒤에도.

영물이 안개를 토하며 내리쳤다. 산이 통째로 떨어지는 듯했다.

노사의 칼이 그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빠르지 않았다.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생을 다듬어 마침내 군더더기 한 점 남지 않은, 한 줄의 선이었다. 늙은 몸이 눈 위에 그린 단 하나의 직선.

안개가 흩어졌다. 도깨비불이 사위어, 마지막엔 반딧불만 한 빛 한 점이 그의 칼끝에 맺혔다가 꺼졌다.

원념은 비명이 아니라, 긴 한숨으로 풀렸다. 비로소 쉬는 자의 한숨이었다.


한 걸음 더 마무리 삽화

돌아오는 길, 나는 그를 부축하려 손을 내밀었다. 그가 마다했다.

"아직 한 걸음은 내 다리로 간다."

"오늘 보신 게 있으십니까." 나는 물었다. 반 치를.

노사는 한참 말이 없었다. 눈이 그치고, 능선 끝으로 붉은 해가 번지고 있었다.

"있더구나." 그가 작게 웃었다. 소년 같은 웃음이었다. "내일은 또 다른 게 보이겠지."

그 말이 어찌나 가볍던지, 나는 콧날이 시큰했다. 사람들은 그를 끝난 이야기로 모셔 두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장(章) 다음에도 백지를 한 장 더 넘기는 사람이었다. 거기 무엇을 쓸지는 아무도, 그 자신조차 몰랐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따르는 것은 검성이 아니었다. 검성이 된 뒤에도 칼을 짚고 한 걸음을 더 떼는, 그 멈추지 않는 등이었다.

"사부님."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발자국이 깊었다. "다음 보름에도 오시겠습니까."

"오지." 눈밭 위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 "길은 사람이 멈출 때 끝나는 거지, 산이 끝날 때 끝나는 게 아니거든."

그리고 그는,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