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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탄 — 역사와 이질의 신앙

목차

키리시탄 — 역사와 이질의 신앙 삽화

본 문서는 front에 속한다. 역사 서술은 실재한 16세기 일본(Reference)에 기반하고, 이질적 신앙이 요마·영계에 닿는 대목은 본 세계관의 픽션(Fiction-Only)이다. 실존 종교는 역사적 키리시탄의 틀로 존중하여 다룬다.


#설 — 화약과 함께 온 것

남만(南蠻)의 배가 일본에 실어 온 것은 셋이다 — 생사(生絲)와 화약, 그리고 신. 앞의 둘은 다이묘가 탐냈고, 셋째는 다이묘가 두려워했다. 그러나 셋은 한 갑판에 함께 실려 왔고, 한 항구에 함께 내렸으며, 오랫동안 떼어 낼 수 없었다. 철포를 사려면 선교사를 받아야 했고, 무역을 열려면 성당을 세워야 했다. 외인이 화약과 신앙의 통역사로 불리는 것은 그래서다.

이 장은 그 신앙의 한 세기를 짧게 짚는다. 외인 PC가 「기도와 성가」 경로(02)를 택했다면, 그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등에 지고 있는지가 여기에 있다.


#해 — 키리시탄 한 세기

#1549, 사비에르의 도래

1549년,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가고시마에 발을 디뎠다. 그가 전한 것이 일본에 처음 들어온 키리시탄(切支丹, キリシタン — 포르투갈어 cristão에서 온 말) 신앙이다. 사비에르는 일본인을 그때껏 만난 어느 백성보다 뛰어나다 평했다 전한다. 곧 야마구치·분고를 거치며 신자를 얻었고, 그가 떠난 뒤에도 예수회는 남았다.

연대(대략)
1549사비에르, 가고시마 상륙. 일본 선교의 시작
1550년대~야마구치·분고·기나이로 선교 확대
1563오무라 스미타다 개종 — 첫 키리시탄 다이묘
1570~1571오무라 스미타다와 예수회가 나가사키 개발에 합의하고, 1571년 나가사키가 남만무역과 선교의 거점으로 열림
1580년대신자 십수만 규모(말기 수십만). 신학교(세미나리오)·콜레지오 등 설립
1587바테렌 추방령 — 선교사 추방 명령. 박해의 첫 신호
1597나가사키 26인 순교
1610년대~금교령 전국화. 신앙은 땅 밑으로 — 가쿠레키리시탄

#예수회와 남만무역

예수회(Society of Jesus, イエズス会)는 단순한 전도 집단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역의 중개자이기도 했다. 포르투갈 상선(나우선)이 어느 항에 정박할지에 영향을 주었고, 그 한 척이 실어 오는 생사·화약·은의 거래는 한 다이묘의 운명을 바꿀 만했다. 그래서 다이묘들은 신앙에는 무관심해도 선교사에게는 친절했다. 무역이 곧 부(富)였고, 부는 곧 철포였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학교를 세웠다. 세미나리오(신학 예비교)는 라틴어·신학·음악을 가르쳤고, 더 높은 학예인 의학·천문은 콜레지오(고등 학원)와 선교 사업 전반이 맡았으며, 활판 인쇄(키리시탄판)는 1590년대에 들어와 돌아갔다. 외인이 "이국 문헌에 밝다"는 클래스 특성은 여기서 온다 — 그는 화약만 다룬 게 아니라, 그 학교의 책상에 앉아 본 자다.

#키리시탄 다이묘의 개종

오무라 스미타다, 오토모 소린, 아리마, 타카야마 우콘 — 개종한 다이묘들이다. 동기는 갈렸다. 어떤 이는 진심으로 데우스를 믿었고, 어떤 이는 무역의 이익을 노렸으며, 어떤 이는 불교 세력(잇코잇키·사찰)을 누를 정치적 지렛대로 신앙을 택했다. 개종한 다이묘는 영지에 우상 파괴를 명하기도 했다 — 절을 헐고 신사를 불태운 키리시탄 다이묘는, 본 세계관에서는 신사의 카미와 사찰의 부처 양쪽에서 미움받는 자가 된다. 영계의 정치에까지 파문이 가는 선택이었다.

#박해와 가쿠레키리시탄

천하가 통일로 기울자, 통일 권력은 두 개의 충(忠)을 가진 신앙을 위험하게 보았다. 바테렌 추방령(1587)으로 시작된 압력은 금교령으로 굳어졌다. 십자가를 밟게 하는 에후미(踏み絵), 사찰에 등록하게 하는 테라우케(寺請) — 신앙을 색출하는 장치가 촘촘해졌다.

그래서 신앙은 땅 밑으로 들어갔다. 가쿠레키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 — 숨은 기리시탄). 겉으로는 불상을 모시되 그 안에 마리아를 숨겼고(마리아관음), 신부 없이 신도들끼리 세례를 잇고, 라틴어 기도를 입에서 입으로 전했다. 신부가 사라진 백 년 동안, 기도문은 조금씩 변형되며 일본어와 라틴어가 뒤섞인 암송이 되었다 — 뜻을 잃고 소리만 남은 거룩한 주문처럼.

#오라쇼와 데우스

  • 오라쇼(orasho) — 라틴어 oratio(기도)에서 온 말. 가쿠레키리시탄이 외운 기도문의 총칭이다. 글로 남기면 발각되니 입으로만 전했고, 그래서 세대를 거치며 음이 닳고 뜻이 흐려졌다. 본 호 03의 기도·성가는 이 오라쇼의 전통을 게임으로 옮긴 것이다.
  • 데우스(Deus) — 라틴어로 신(神). 사비에르 초기 통역 단계(1549~1551, 야지로 통역)에서 "다이니치(大日 — 대일여래)"로 옮겼으나 대일여래 본존과 혼동되자, 사비에르가 라틴어 데우스를 음역해 쓰도록 바꿨다. 이 땅의 어떤 카미와도, 어떤 부처와도 같지 않은 이름. 그 낯섦 자체가 본 호의 핵심이다.

#향 — 이질의 신앙이 어둠에 닿을 때

아래는 본 세계관의 픽션(Fiction-Only)이다. 탁자가 채택할 때만 진실이다.

이 땅의 신비는 토착이다. 음양사의 주술은 오행을 부리고, 밀교승의 인(印)은 부동명왕을 부르며, 신주·무녀의 결계는 카미의 질서를 빌린다. 요마들은 이 문법을 안다 — 천 년을 같은 숲, 같은 신사, 같은 경문과 싸워 왔으니까. 오니는 진언을 듣고 물러설 줄 알고, 원령은 금줄의 의미를 안다.

그런데 데우스의 이름은 그 문법 밖에 있다.

외인이 라틴어 오라쇼를 외면, 요마는 처음 듣는 소리에 당황한다. 그것은 부동명왕도 카미도 아니다. 봉인의 형식이 다르고, 정화의 방향이 다르며, 무엇보다 — 그 신은 이 땅에 무덤이 없다. 토착의 신비는 땅과 핏줄에 매여 있지만, 데우스는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채 어디에나 있다고 한다. 요마에게 그것은 낯섦이고, 낯섦은 잠시의 빈틈이다. 퇴마 성가가 요마를 약화시키는 까닭이 여기 있다 — 익숙한 적은 막을 줄 알지만, 처음 보는 기도는 막는 법을 모른다.

그러나 낯섦은 양날이다. 이 땅의 카미는 데우스의 종을 객(客)이자 침입자로 본다. 신사의 결계는 키리시탄에게도 살짝 차갑고, 토착 영(靈)들의 협력을 빌리기 어렵다. 우상을 부순 키리시탄 다이묘의 영지에서, 미움받은 카미가 끝내 등을 돌리는 밤이 온다. 외인-선교사의 가장 깊은 외로움은 시대를 앞서가는 외로움이 아니라 — 자기 신이 이 땅에서 손님이라는 외로움이다. 그가 부르는 신은 멀리 있고, 그가 막아 주는 사람들의 신은 그를 미워한다.

가쿠레키리시탄의 오라쇼는 그래서 더 무겁다. 뜻을 잃은 라틴어, 음만 남은 기도 — 마치 영(靈)을 부르는 주문과 같은 형식이 되어 버린 거룩한 말. 어떤 GM의 탁자에서는, 백 년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그 닳은 기도가 본래의 신학이 잊은 힘을 우연히 품게 된다. 그것이 축복인지 변질인지는 — 그 탁자의 이야기가 정할 몫이다.


외인을 신앙으로 빚는 법은 다음 장에. → 02 대체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