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v1.3.3 · fc-doc

#이 책에 대하여 — 제국견문록 (諸國見聞錄)

목차

A travel road and harbor threshold, pack, straw hat, and small boat silhouette at the edge of white water, no characters in close detail, a quiet invitation to journey.

권위. 본문은 Fiction-Only — 한 외인의 일기와 그것을 옮긴 편자의 말이며, 사실과 소문과 오해가 섞여 있다. 각 견문 장의 §탁자에서만 Scene Tool, 교차표육십여주 일람Summary. 본권에 법(法)은 없다 — 수치가 필요한 일은 전부 정본의 몫이다.


#입수기 — 종이는 발이 길다

사카이의 지물포는 종이를 근(斤)으로 판다. 새 종이는 앞방에서 장(張)으로 팔고, 헌 종이는 뒷방에서 저울에 단다. 글씨가 적힌 채 저울에 오른 종이는 벽지가 되거나, 불쏘시개가 되거나, 우산이 된다.

이 책은 그 뒷방에서 시작되었다.

"남만 글입니다." 주인이 선반 안쪽에서 기름천에 싸인 묶음을 내리며 말했다. "읽는 자가 없어 근으로 넘깁니다. 그림이라도 있으면 값을 더 쳤을 텐데, 보시다시피 글씨뿐이라."

묶음은 여섯이었다. 끈을 풀자 가로로 누운 글씨가 빼곡했다 — 오른쪽에서 왼쪽이 아니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리는, 지렁이 같기도 하고 잔물결 같기도 한 글씨. 그리고 그 행간마다 깨알 같은 일본 글씨가 붙어 있었다. 누군가 이 물결 글을 한 줄 한 줄 풀어 둔 것이다.

"어디서 난 물건이오?"

"유녀집 외상값 대신 받았습니다. 유녀는 뱃사람한테 받았다 하고, 뱃사람은 — 거기까지는 저도 모릅니다. 종이란 본래 발이 긴 물건이라."

값을 치르고 문을 나서는데 주인이 등 뒤에서 한마디 보탰다. "그거 적은 남만인 말입니다. 온 나라를 걸어 다녔다는 소문은 있습니다. 가는 데마다 무얼 적어 대서, 길에서는 붓이라 불렸다고."

그날 밤 첫 묶음을 폈다. 행간의 풀이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바람이 잤다. 배는 닻을 내렸고, 내일 아침 물때에 맞춰 뭍에 오른다고 한다."

여섯 묶음을 다 읽는 데 한 계절이 걸렸다. 다 읽고 나서, 이것을 책으로 묶기로 했다. 당신이 들고 있는 것이 그 책이다.

편자 주: 행간의 풀이가 누구의 손인지 우리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다만 일기 속에 제 이름을 적지 말아 달라 부탁한 통사가 하나 있다 — 짐작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1. 이 책은 무엇인가

이 책은 한 외인이 제 발로 걸어서 적은 견문록이고, 그 기록을 편자가 입수해 옮긴 것이다. 화자의 이름은 두아르테 핀투 — 남만 상관의 대리인이며, 길 위에서는 '남만의 붓'이라 불린 사내. 그가 누구이고 어디를 어떻게 걸었는지는 화자 — 남만의 붓에 따로 적었다. 사이카이(규슈)에 내려 북방의 오우에서 다리가 멈출 때까지, 그는 두 번의 겨울을 길에서 났고, 본 것과 들은 것을 가려 적는다는 약속 하나를 끝까지 지켰다.

옮기며 편자가 한 일은 둘뿐이다. 하나, 일기를 여정의 차례대로 묶었다 — 총론 두 장과 견문 열 장이 그 결과다. 둘, 화자가 보지 못했거나 잘못 보았거나 차마 적지 못한 자리에 주석을 달았다. 입수기 끝에서 본 것처럼 편자 주:로 시작하는 인용문이 그것이다. 화자의 글이 길의 눈높이라면 주석은 조금 높은 데서 내려다본다 — 탁자를 차리는 GM에게 건네는 말은 대개 그 주석 속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한 줄이다. 이 책은 땅의 책이다. 전국풍토기가 시대의 공기를 — 그 시대를 산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 담았다면, 본권은 그 공기가 내려앉는 땅의 얼굴을 담는다. 산이 어떻게 생겼고, 길이 어디로 휘고, 어느 항구에 무엇이 쌓이고, 어느 고개를 넘으면 말씨가 바뀌는지. 당신의 캠페인이 "언제"와 "누구"를 전국풍토기에서 얻었다면, "어디"는 여기서 얻는다.


#2. 전국풍토기와의 차이

같은 서가에 꽂히는 두 권이지만, 하는 일이 다르다.

전국풍토기 (fc02)제국견문록 (fc09)
시간과 사람 — 시대의 공기, 신분의 하루공간 — 땅의 얼굴, 길의 차례
시선이름 없는 눈이 어디에나 있다한 사람의 눈이 한 번에 한 곳에 있다
구성신분별 — 사무라이에서 기리시탄까지지역별 — 상륙에서 종착까지 견문 열 장
기록의 성격서술 그 자체가 풍경이다화자는 틀릴 수 있다 — 그 틈까지 풍경이다
읽는 차례먼저. 시대의 공기를 들이쉰다나중. 그 공기를 안고 길에 나선다

차례는 권유일 뿐이다. 두 권은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어느 쪽이든 홀로 완결된다. 다만 함께 읽으면 한쪽이 다른 쪽의 배경이 된다. 전국풍토기를 먼저 읽고 본권을 읽으면 화자가 걷는 길가의 사람들이 낯익고, 본권을 먼저 읽고 전국풍토기를 읽으면 그 사람들이 선 땅이 낯익다.


#3.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견문인가

이 책의 문장은 셋 중 하나다.

화자가 본 것. "내가 본 것이다"라 적는다. 가장 믿을 만한 층이지만, 다 믿지는 말 것 — 그는 외인이고, 이 나라 말을 통사를 거쳐 들었고, 장사꾼이라 숫자를 사랑한 만큼 숫자를 부풀렸다. 본 것조차 본 대로가 아닐 수 있다.

화자가 들은 것. "들은 이야기다"라 적는다. 발이 닿지 않은 땅의 이야기, 갱도 깊은 곳의 무언가, 순례길이 무엇을 두르고 있다는 옛말 — 본권에서 가장 기이한 대목들은 대개 이 층에 있다. 세 항구의 뱃사람이 같은 이름을 말했다고 그 이름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소문이 거기 있었다는 것만은 진실이다.

편자가 단 것. 편자 주:의 층. 화자보다 멀리서 보지만, 편자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셋 모두 Fiction-Only다 — 어느 문장도 당신의 탁자를 구속하지 않는다. GM은 화자의 기록을 글자 그대로 진실로 만들어도 좋고, 절반만 맞게 두어도 좋고, 화자가 완전히 속은 것으로 비틀어도 좋다. "내가 본 것이다"라 적힌 문장조차도. 본권이 정본과 다르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면 틀린 쪽은 언제나 이 책이다 — 정확히는, 그렇게 보았거나 그렇게 들은 화자다. 그 어긋남을 고치지 않고 남겨 둔 것은 편자의 게으름이 아니다. 거기가 GM이 들어설 자리이기 때문이다.

예외는 둘이다.

  • 각 견문 장 끝의 §탁자에서는 화자의 일기가 아니라 GM용 장면 도구다 — Scene Tool. 탁자에 펴 두고 쓰라고 만들었다.
  • 교차표육십여주 일람은 본권의 열 지방과 정본의 권역, 옛 국(舊國)의 이름을 잇는 요약이다 — Summary. 이름과 구획이 화자의 글과 다르게 보이면 표를 따른다.

마지막으로, 법(法)에 대하여. 없다. 이 책 안에서는 전력이 깎이는 일도 활력이 소진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고, 판정의 주사위는 한 번도 구르지 않는다 — 부록의 d10·d100은 장면을 고르는 주사위일 뿐, 판정이 아니다. 화자는 그런 것을 몰랐고, 편자는 적지 않았다. 굴릴 일이 생기면 정본으로 간다 — 그쪽이 법이고, 이쪽은 길이다.


#4. 읽는 법

전국풍토기는 통독하지 말라 했다. 이 책의 읽는 법은 조금 다르다 — 이 책은 길이라서, 걷는 법이 따로 있다.

  • 세션 전에는 한 지역씩. 다음 이야기가 일어날 땅의 장 하나만 읽는다. 화자와 함께 그 땅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준비는 그것으로 족하다.
  • 세션 중에는 덮어 둘 것 — §탁자에서만 예외. 탁자 위에서 이 책의 본문은 도구가 아니다. 각 장 끝의 §탁자에서만이 탁자에 올라올 자격으로 쓰였다.
  • 캠페인의 무대를 고를 때는 통독할 것. 이 책이 통독을 권하는 유일한 때다. 상륙에서 종착까지 화자와 함께 걸어 보라 — 당신의 이야기가 어느 땅을 원하는지, 대개는 그 땅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 두 번째 읽을 때는 주석만 따라 읽어 볼 것. 편자 주:만 이어 읽으면 또 한 권의 얇은 책이 된다 — GM을 위한 책이.

#편자의 한 마디

화자는 장부가 거짓이면 장사꾼이 망한다고 적었다. 편자는 한 줄을 보탠다 — 기록은 틀려도, 그 틀림이 어디서 왔는지 보이는 기록은 망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절반은 사실이고 절반은 견문이며, 어느 쪽이 어느 절반인지는 끝내 적지 않았다. 그 경계선을 긋는 손이 당신의 것이기를 바라며 옮겼다.

편자는 종이값을 치렀을 뿐이다 — 길값은 이제 당신이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