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v1.3.3 · fc-doc

#견문 3 — 시코쿠 (四國)

목차

권위. 본문은 Fiction-Only — 한 외인의 견문이며, 사실과 소문과 오해가 섞여 있다. 끝의 「탁자에서」만 Scene Tool. 본권에 법(法)은 없다 — 수치가 필요하면 정본으로 간다. 이 책 전체의 약속은 이 책에 대하여에, 이 일기를 쓴 자는 화자에 있다.

다루는 옛 국: 아와(阿波) · 사누키(讚岐) · 이요(伊豫) · 도사(土佐) — 이름과 구획의 본표는 교차표가 쥔다. 여정의 앞 장은 산요·산인, 다음 장은 기이다.

시코쿠 견문 지도


#여로 — 흰 옷의 배

핀투의 일기에서. 산요의 항구를 떠나 섬으로 건너는 아침.

배에 오르니 흰 옷이 가득했다. 스무남은 사람이 똑같이 희게 입고 뱃전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나는 혀에게 물었다. "초상이 났는가? 누가 죽었기에 배 한 척이 다 상복인가."

혀가 웃음을 참았다. "순례자들입니다. 저 섬을 도는 사람들이지요. 헨로(遍路)라 부릅니다."

우리와 달리 이 나라 사람들은 흰 빛을 죽음의 빛으로 입는다. 그런데 혀의 말로는, 순례자의 흰 옷이 바로 그 죽음의 옷이 맞다 한다. 길에서 죽어도 좋다는 차림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죽을 채비를 갖추고 나서는 여행이라 — 나는 그 말을 장부의 어느 난에 적어야 할지 한참 몰랐다.

배가 뜨자 방울 소리가 시작되었다. 순례자마다 지팡이에 작은 방울을 달고 있어, 배가 흔들릴 때마다 스무 개의 방울이 함께 울었다. 칼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저 소리가 나는 동안은 내 일이 없소." 무슨 뜻이냐 물었더니, 방울이란 산 것에게도 산 것 아닌 것에게도 제 자리를 알리는 소리라 했다. 숨을 작정인 자는 방울을 달지 않는다.

곁에 앉은 순례자는 이가 다 빠진 노인이었다. 어디까지 가느냐 물었더니 노인은 섬 쪽을 가리키며 "돈다"고만 했다. 어디에 닿으면 끝나느냐 물었더니, 끝나는 곳은 없다고, 떠난 곳에 돌아오면 그만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 나라의 순례를 생각했다. 우리의 순례자는 성인의 무덤에 닿으면 울고,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길은 성지를 위해 있다. 그런데 이 섬에서는 닿는 곳이 따로 없다 — 길이 곧 성지다. 같은 곳을 도는 걸음이 어떻게 공덕이 되는가. 나는 아직 모른다.

노인의 삿갓에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혀가 읽어 주었다. "둘이서 간다 — 동행이인(同行二人)이라 적혔습니다." 일행이 있느냐 물었더니 노인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 둘이란 누구인가. "대사님." 노인이 말했다. "혼자 걸어도 대사님이 함께 걸으신다."

대사가 누구냐고 물었다. 옛적에 이 섬을 처음 한 바퀴 돈 큰 스님이라고, 지금도 길 위 어딘가를 걷고 계시다고 했다. 죽은 지 오랜 사람이 어떻게 걷는가 — 라고 묻는 대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장사꾼은 남의 밑천을 헐뜯지 않는 법이다. 더구나 그 밑천이 사람의 걸음을 버티게 해 주는 것이라면.

한낮에 섬이 보였다. 멀리서 본 섬은 온통 산이었다. 푸른 등뼈 같은 산줄기가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나라들은 그 등뼈에 등을 대고 저마다의 바다를 향해 앉아 있다 한다.

뱃사람 하나가 내 곁에 와서, 외인에게 좋은 것을 가르쳐 주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 섬에는 여우가 없습니다." 여우가 무서운 짐승이냐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여우가 못 건너온 겁니다. 너구리들이 나루를 지키고 있어서." 그러고는 제 농담에 제가 웃었는데, 웃음의 끝이 조금 짧았다.

해 질 무렵 이요(伊豫)의 항구에 내렸다. 부두에서 순례자들은 바다를 향해 절을 하고 — 무엇에 절하는지 나는 보지 못했다 — 방울을 울리며 길로 흩어졌다. 같은 길을, 같은 방향으로.

장부에 적는다. 이 섬의 첫인상은 둘이다. 산이 가운데를 막은 섬. 그리고 그 산기슭을 흰 옷의 사람들이 고리처럼 도는 섬. 왜 도는지는 — 들은 이야기가 여럿이다. 하나씩 적어 가겠다.


#사실의 땅 — 등을 맞댄 네 나라

#산이 가운데를 막은 섬

이 섬에는 옛 국이 넷 있다. 넷은 이웃이라기보다 등을 맞댄 남이다. 가운데 산줄기가 높고 험해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려면 바다로 돌거나 산을 넘는다. 산길 한 리(里)는 들길 세 리의 값을 한다 — 내가 걸어 본 것이다. 리와 초(町)의 감각은 용어·도량형 사전을 곁에 두면 된다.

같은 섬인데 고개 하나를 넘으면 말씨가 바뀌었다. 됫박도 바뀌었다. 됫박이 나라마다 다른 것은 이 나라 어디나 그렇지만, 한 섬 안에서 넷이 다 다른 것은 여기서 처음 보았다. 장사꾼에게 이것은 지도보다 정확한 국경이다.

옛 국자리일기의 한 줄
이요 (伊豫)서쪽, 세토내해항구와 섬과 오래된 탕(湯). 뱃길의 나라 — 내가 내린 문이다.
사누키 (讚岐)북쪽, 세토내해비에 인색한 하늘. 사람들이 땅을 파서 하늘을 저장한다.
아와 (阿波)동쪽, 좁은 물목바다가 소용돌이치는 어귀. 쪽빛 물감의 나라 — 내가 떠난 문이다.
도사 (土佐)남쪽, 큰 바다검은 큰 바다와 곧은 사람들. 섬의 등 뒤편.

#두 개의 바다

이 섬은 바다를 두 개 가졌다. 북쪽의 세토내해는 섬들에 안긴 물이라 호수처럼 길이 들었다 — 배가 밭을 갈듯 오간다. 남쪽 도사의 바다는 막아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큰 바다다. 물빛부터 다르다. 북쪽 물이 푸르다면 남쪽 물은 검다. 도사의 뱃사람들은 그 바닷속에 검은 강이 흐른다고 말한다 — 그 강을 타면 배가 나는 듯이 동쪽으로 가고, 잘못 타면 다시는 뭍을 보지 못한다고. 들은 이야기다. 다만 세 포구의 뱃사람이 같은 강을 말했다.

아와의 동쪽 어귀에서는 바다가 소용돌이친다. 좁은 물목으로 두 바다의 물이 드나들며 서로 부딪치는 것인데, 물때가 맞으면 배에서도 소용돌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어귀를 건너면 기이다.

#마른 하늘과 판 호수

사누키는 비가 적다. 남쪽의 비를 가운데 산줄기가 다 받아 내고, 들에는 마른 하늘만 넘어온다 들었다. 들은 넓되 강은 짧고 성급해서, 비가 오면 한나절 만에 바다로 다 달아난다.

그래서 사람들이 못을 판다. 우리와 달리 이 나라의 이 들 사람들은 가뭄을 하늘에 빌기만 하지 않고 땅에 새겨 둔다. 마을마다 못이 있고, 큰 것은 작은 호수만 하다. 누가 팠느냐 물으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라고 답한다 — 이 들에서 못은 곳간이고, 족보이고, 성벽이다. 못가에는 으레 작은 사당이 있어 물의 신을 모신다. 판 것은 사람인데 신이 세를 받는 셈이라 — 라고 적었다가, 가뭄 든 해에 물꼬를 두고 마을끼리 낫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농을 지웠다. 물이 칼이 되는 들에서는 신이라도 곁에 세워야 셈이 끝나는 것이다.

장사꾼의 눈으로 하나 적는다. 못의 수효를 세면 그 들의 쌀을 셈할 수 있다. 못이 많은 들은 부지런한 들이고, 부지런한 들은 두려움이 많은 들이다. 부와 두려움이 같은 구덩이에 고여 있었다.


#사람과 풍속 — 도는 사람들과 머무는 사람들

#고리의 길

섬의 바깥 둘레를 따라 절과 사당이 마디처럼 놓여 있다. 영장(靈場)이라 부른다. 순례자들은 그 마디를 차례로 밟으며 섬을 돈다. 모두 몇 군데냐 물었더니 답이 제각각이었다 — 절에서 세는 수와 길에서 세는 수가 달랐고, 같은 절에서도 묻는 승려마다 달랐다. 수가 흐린 장부는 장사꾼을 불안하게 한다. 이 셈의 기이한 사정은 뒤에 적는다.

순례자의 차림은 어디서나 같다. 흰 옷, 삿갓, 방울, 그리고 지팡이. 지팡이를 그들은 지팡이로 여기지 않는다 — 대사가 함께 걷는 몸이라 여긴다. 하루 걸음이 끝나면 제 발보다 지팡이 끝을 먼저 씻어 마루에 모신다. 우리와 달리 이 나라 사람들은 가장 귀한 것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그것을 도구라 부르지 않는다.

길에서 죽는 순례자도 있다. 흰 옷이 본래 그 채비라 했다. 죽으면 길가에 묻고, 지팡이를 무덤에 꽂아 묘표로 삼고, 방울은 함께 묻는다. 길을 걷다 보면 지팡이가 꽂힌 작은 봉분을 하루에도 몇 번 지난다. 처음에는 일일이 모자를 벗었으나, 사흘째부터는 셀 수가 없어 그만두었다. 내가 본 것이다.

#내미는 손

이 섬의 길가 사람들은 순례자에게 거저 내민다. 주먹밥을, 짚신을, 처마 밑 잠자리를. 받은 순례자는 절 한 번과 제 이름을 적은 작은 종이 한 장으로 갚고, 집 주인은 그 종이를 문설주에 붙인다. 순례자의 기도가 집을 지켜 준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 셈으로는 손해 보는 장사다. 그런데 마을 노인의 말이 이랬다. "거지에게 주는 것이 아니오. 대사님께 드리는 것이오. 순례자 뒤에는 대사님이 걸으시니." 즉 이들은 적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사는 것이다 — 라고 적으면 장부는 맞는데, 사누키의 들길에서 늙은 아낙이 내 몫까지 주먹밥을 내밀었을 때는 장부가 맞지 않았다. 나는 순례자가 아니고, 흰 옷도 입지 않았고, 누가 보아도 외인이었다. 혀가 사양하려 하자 아낙이 말했다. "걷는 사람이잖소." 내가 받은 것이다. 이 섬의 신앙이 어느 가르침에 기대어 있는지는 불교 해설이 따로 보지만, 그날 내가 받은 것은 가르침보다 오래된 무엇이었다고 적어 둔다.

#도사 사람들

산을 넘어 도사에 들기 전부터 들은 말이 있다. "도사 사람과 흥정할 때는 값을 두 번 부르지 마라 — 처음 값이 마지막 값이다." 가서 보니 들은 그대로였다. 말이 곧고 빠르며, 에두르는 법을 게으름으로 친다. 술자리에서는 잔이 돌고, 받은 잔은 비우기 전에 내려놓지 못한다. 나는 사흘 밤을 그 법도에 바치고 나서야 장부를 다시 펼 수 있었다.

무사들은 반은 농사꾼이다. 밭머리에 창을 세워 두고 김을 매다가, 부르면 창을 뽑아 들고 달려간다 한다. 들은 이야기다 — 다만 밭머리에 창이 서 있는 것은 내가 본 것이다.

바다 일도 그 기질대로다. 도사의 배는 검은 바다로 나가 가다랑어를 낚는다. 잡은 것은 쪄서 말리고 또 말려 나무토막처럼 굳히는데, 우리와 달리 이 나라 사람들은 생선을 돌로 만들어 두고 대패로 깎아 먹는다. 처음에는 웃었고, 국물을 얻어먹고는 웃음을 거두었다. 가벼우며 썩지 않고 값이 나가는 것 — 장사꾼이 바다를 건너 찾아다니는 물건의 세 가지 덕을 다 갖추었다.

#산의 마을들

가운데 산줄기 속에도 사람이 산다. 골이 깊어 평지의 말이 닿지 않고, 소금이 귀해 소금 한 줌이 돈 노릇을 하는 마을들이다. 골과 골 사이는 다리 대신 덩굴로 엮은 다리가 잇는다. 발을 디딜 때마다 다리 전체가 짐승처럼 출렁였다 — 내가 건넌 것이다. 두 번 건너야 했는데, 두 번째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골 안쪽 마을들에는 먼 옛날 싸움에 진 사람들이 칼을 묻고 숨어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캐묻는 것은 길의 예의가 아니라 그만두었다. 다만 적어 둔다 — 그 마을의 늙은이가 부르는 노래의 가락이, 들의 노래보다 미아코(교토) 쪽 가락에 가깝다고 혀가 말했다.


#혼세의 땅 — 길을 쥔 자들

#고리의 절들

영장을 지키는 절들은 묘한 자리에 서 있다. 서로 멀고, 모시는 가르침의 갈래도 제각각인데, 길 하나로 묶여 한 몸처럼 군다. 어느 큰 산문에도, 어느 영주에게도 매이지 않았다 한다. 순례자를 해친 자는 섬의 어느 절에서도 문이 닫히고, 그 소문은 걸음보다 빨리 고리를 돈다.

영주들도 순례길은 건드리지 않는다. 길을 끊은 영주의 집안은 삼대를 못 간다는 속설이 있다 — 들은 이야기다. 속설의 효험인지, 전쟁 중에도 순례자는 관문을 그냥 지난다. 문서도 없이, 삿갓과 방울만으로. 이 나라에서 통행세가 없는 길은 이 길 하나뿐이었다. 가장 싼 길이, 아무것도 사고팔지 않는 길이라는 것은 장사꾼이 적기에 쓴 셈이다.

#도사의 기척

도사에서 들은 이야기 하나. 골짜기마다 제각각이던 성들을 젊은 영주 하나가 차례로 거두고 있다 한다. 밭머리에 창을 세워 둔 그 사내들이 그의 군사라고. 술자리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좌중의 목소리가 한 단 낮아졌다 — 낮아진 채로,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섬을 도는 길도 언젠가 그 사람의 것이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자리에 있던 늙은 승려가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길은 누구의 것이 된 적이 없소. 영주는 길 위를 지나는 것들 중에서 빠른 축에 들 뿐이오."

#길이 두른 것

왜 도는가. 약속대로, 들은 이야기들을 적는다.

순례자들의 답은 한결같다 — 공덕을 쌓으러, 대사와 함께 걸으러. 그런데 절의 늙은 승려들에게서는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옛적 이 섬에 나쁜 것들이 들끓던 때가 있었다고. 그때 대사가 — 혹은 대사보다 먼저의 누군가가, 이 대목은 말하는 이마다 달랐다 — 섬의 둘레에 마디를 박고 그것을 길로 이어, 섬을 한 바퀴 둘렀다고 한다. 길이 곧 울타리, 결계(結界)라는 것이다.

마디는 여든여덟이라 했다. 절의 수를 물으면 답이 제각각이던 까닭을 거기서 들었다 — 절은 불타기도 하고 옮기기도 하여 셈이 바뀌지만, 마디는 바뀌지 않는다고. 여든여덟은 길의 셈이 아니라 결계의 셈이라고. 무엇이 그 수를 정했느냐고 물었더니 승려는 웃기만 했다.

울타리는 걸음으로 산다고도 했다. 도는 사람이 끊기면 결계가 식는다고 — 그래서 흉년에도 마을이 순례자를 먹인다고. 접대는 인정이 아니라 성벽의 보수라고 말한 것은 아와의 늙은 승려였다. 다만 그 울타리가 무엇을 막는 것인지는 말이 갈렸다. 산속의 것을 바깥으로 못 나오게 가둔 울타리라는 자가 있었고, 바다 건너의 것을 섬에 못 들어오게 막는 울타리라는 자가 있었다. 안과 밖이 정반대인데 양쪽 다 제 말에 확신이 있었으므로, 나는 둘 다 적어 둔다.

장사꾼으로서의 내 셈은 이렇다 — 길을 살려야 먹고사는 절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치면 셈이 깔끔하다. 그렇게 적고 덮으려 했다. 그런데 산속에서 하룻밤, 골짜기 너머로 길게 우는 소리를 들은 밤이 있었다. 짐승 소리라고 칼이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 둘 다 그 뒤로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 밤에 한해서 나는 울타리 쪽에 걸고 싶었다.

편자 주: 순례길이 결계라는 말이 참인지, 절반만 참인지, 길을 살리려는 절들의 장사 수완인지 — 본권은 정하지 않는다. 정본 전국의 땅의 여섯 권역 어디에도 이 섬은 들지 않는다 — 비어 있는 땅은 GM의 것이다. 마디 하나가 꺼진 순례길만큼 캠페인을 시작하기 좋은 자리도 드물다.


#영이의 땅 — 너구리의 섬

#여우가 건너지 못한 섬

뱃사람의 농담을 섬 곳곳에서 다시 들었다. 농담이 아니었던 셈이다. 미아코 쪽에서는 여우가 사람을 홀려 권문에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섬 사람들은 여우 이야기를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한다. 이 섬에 여우는 없고 — 여우가 건너지 못한 것인지, 너구리가 건너지 못하게 한 것인지는 말하는 이마다 달랐다 — 그 자리를 너구리가 차지하고 있다.

#너구리와 흥정하는 법

이 섬의 너구리는 속이지만, 빼앗지는 않는다 — 대체로 그렇다고 한다. 술을 좋아하고, 장단을 좋아하고, 내기를 좋아한다. 달밤에 배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 산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법도다. 잔치를 방해받은 너구리는 뒤끝이 길다고.

마을과 너구리 사이에는 약조가 있다. 가을 축제의 첫 술 한 통을 숲 어귀에 내놓는 마을, 다리목의 돌에 해마다 새 새끼줄을 감아 주는 마을 — 그 값으로 너구리는 밤길의 장난을 거두고, 어떤 마을에서는 시집가는 행렬을 고개 너머까지 바래다준다고 한다. 들은 이야기다. 어느 항구의 거간은 "너구리 빚"이라는 말을 썼다 — 너구리에게 신세를 진 자는 갚을 때까지 무슨 셈을 해도 끝자리가 맞지 않는다고. 거간이 웃자고 한 말인데, 말하는 동안 웃지 않았다.

사누키에는 야시마(屋島)라는 산의 늙은 너구리가 섬 너구리들의 우두머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섬에 큰일이 있으면 너구리들이 그 산에 모여 의논한다고 — 사람의 나라가 예순몇으로 갈라져 싸우는 동안, 너구리의 나라는 하나라는 농을 혀가 보탰다.

내가 본 것도 적는다. 어느 절 마루 밑에서 너구리 한 마리가 나를 오래 보았다. 짐승의 눈이 아니었다고 적으면 과장이 되므로, 짐승치고는 셈이 긴 눈이었다고만 적는다. 그날 밤 내 저울추가 한 푼 모자랐고, 이튿날 아침에는 한 푼 남았다. 절의 승려는 사과 대신 이렇게 말했다. "셈을 좋아하는 분이 묵으셨으니, 저쪽도 셈을 한번 해 보고 싶었겠지요."

편자 주: 이 섬의 너구리를 탁자에 올릴 때의 자리와 수는 정본과 요마 변형 색인의 타누키 항목, 짐승·사물·장소의 요마가 쥔다. 핀투의 기록이 맞다면 — 이들은 베는 상대가 아니라 흥정하는 상대다.

#이누가미 — 소문이 무는 것

도사에서 들은 이야기다. 어느 집안에는 개의 영(靈)이 깃들어 있어, 그 집안 사람이 미워하거나 시기한 자를 문다고 한다. 물린 자는 까닭 모르게 앓아눕고, 헛것을 보고, 개처럼 군다고. 그런 집안을 이누가미(犬神) 붙은 집이라 부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집안을 가려낸다. 혼담이 오가면 먼저 서로의 집안 내력을 캐고, 그런 소리를 듣는 집과는 사돈을 맺지 않고, 우물을 같이 쓰지 않는다. 누가 정했는지 모를 명부가 마을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내가 본 것을 적는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듣는 집과 거래를 했다. 다른 거간들이 꺼린 덕에 값이 쌌다 — 장사꾼의 부끄러운 정직으로 적어 둔다. 그 집의 말린 가다랑어는 섬에서 산 것 중 가장 좋았고, 셈은 정확했고, 차는 따뜻했다. 그 집의 개는 한 마리였고, 늙었고, 짖지 않았다.

이누가미가 사람을 무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소문이 사람을 무는 것은 보았다 — 그 집 딸의 혼처가 세 번 깨졌다는 말을, 나는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들었다. 우리 나라에도 마녀라 불려 마을에서 몰리는 여인들이 있다. 바다를 이만큼 건너왔는데, 사람이 사람을 추려 내는 법은 닮아 있었다. 병의 까닭을 모를 때 사람은 까닭이 있는 집을 만들어 낸다 — 이 한 줄은 본 것과 들은 것 어느 쪽으로도 분류하지 못하겠다. 그냥 적어 둔다.

편자 주: 이누가미를 시나리오에 올리는 GM에게. 이 소재의 칼날은 요마가 아니라 소문이다. 그 집이 정말 무언가를 부리는지, 누군가 소문을 부리는지 — 답은 탁자가 정하되, 어느 답이든 "그 집안 탓이었다"로 끝나지 않게 할 것. 정본과 요마 변형 색인에 이누가미라는 이름은 없다 — 본권이 처음 받아 적는 전승이며, 형체와 수치가 굳이 필요해지면 원령·사령·저주 계열의 저주형에서 빌려 깎는다. 핀투가 그 집에서 본 것은 괴물이 아니라 값이 깎인 사람들이었다.

#같은 길을 도는 것

순례길의 밤에도 방울 소리가 난다. 마을 사람들은 밤 방울 소리에 문을 열지 않는다 — 다만 어떤 집은 문밖에 밥 한 그릇을 내놓는다. 길에서 죽은 순례자가 못다 돈 길을 마저 도는 것이라고, 산 사람의 접대를 받을 수 없으니 문밖의 것만 두고 가는 것이라고 한다.

아와의 고개에서 나는 배에서 만난 그 이 빠진 노인을 다시 보았다. 우리는 배와 말을 갈아탔고 노인은 제 발로 걸었을 터인데, 노인이 우리보다 앞에 있었다. 인사하러 다가서려는 내 소매를 혀가 잡았다. 노인은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고, 방울 소리는 그 뒤로도 한참 남아 있었다. 내가 본 것이다 — 라고 적고 싶으나, 해 질 녘이었고 나는 지쳐 있었다. 이 문장만은 두 난의 사이에 적는다.

순례자들은 이런 이야기에 놀라지 않는다. 한 사람이 내게 말했다. "고리에는 끝이 없잖소. 끝을 못 본 사람이 계속 걷는 게, 뭐가 이상하오."


#탁자에서

Scene Tool. 이 절만 GM용 장면 도구다.

이 섬의 테마는 '고리'다. 순례의 고리, 결계라는 소문의 고리, 같은 길을 마저 도는 망자. 시코쿠의 이야기는 직선보다 원으로 굴릴 때 좋다 — 일행이 떠난 자리로 돌아왔을 때 무엇이 달라져 있는가가 이 섬의 질문이다. 길 위에서 굴릴 잔사건은 여로의 사건을 편다.

순례 호위. 순례자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길의 법이 있는 섬이다. 그래서 순례자로 꾸민 도망자가 있고, 순례길로만 움직일 수 있는 호송이 있고, 그 법을 우회해야 하는 추적자가 있다. 일행이 호위하는 흰 옷이 진짜 순례자인지부터가 장면이 된다.

꺼진 마디. 영장 하나가 비었다 — 불탔거나, 주지가 죽었거나, 절이 어느 영주의 편에 섰거나. 그 구간의 마을들에서 밤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결계의 소문이 참인지는 GM이 정한다 — 참이 아니어도 마을의 공포는 참이고, 마디를 다시 세우는 일은 어느 쪽이든 보수를 받는다. 사회 장면의 판정 틀이 필요하면 정본 비전투 규칙을 빌린다.

너구리 정치. 고개의 통행, 시장의 흥정, 잃어버린 물건 — 이 섬에서는 그 어느 것이든 너구리와의 흥정으로 굴릴 수 있다. 너구리가 받는 값은 돈이 아니다. 술, 장단, 체면, 그리고 비밀. 수와 변형은 fc08이 쥔다.

이누가미의 혼담. 도사의 두 집안 사이에 혼담이 섰고, 사흘 만에 한쪽이 이누가미 붙은 집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일행을 사는 것은 혼담을 지키려는 쪽일 수도, 깨려는 쪽일 수도, 소문의 출처를 찾으려는 제삼자일 수도 있다. 개의 영이 정말 있는지는 GM이 정한다 — 다만 소문이 난 길을 거슬러 가면 끝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셈이 있고, 그 셈을 밝히는 것이 이 사건의 결말이다. 다루는 수위는 「영이의 땅」의 편자 주가 쥔다.

도사의 기척. 골짜기의 성들을 거두는 젊은 영주는 칼도 사고 붓도 산다. 호위, 사자(使者), 검은 바다의 뱃길 호송 — 의뢰인으로 쓰기 좋고, 캠페인을 길게 끌 못으로 쓰기는 더 좋다. 본권은 그에게 이름을 주지 않는다 — 그 이름은 당신의 탁자에서 정해진다.


닿을 곳 없는 길은 끝나지 않고, 끝나지 않는 길은 울타리가 된다 — 들은 이야기다. 다만 이번만은, 믿는 쪽 난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