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 견문 (奧羽見聞)
목차
권위. 본문은 Fiction-Only — 한 외인의 기록이며, 사실과 소문과 오해가 섞여 있다. 화자가 누구인지는 화자 — 남만의 붓에, 이 책 전체의 약속은 이 책에 대하여에 있다. §탁자에서만 Scene Tool. 본권에 법(法)은 없다 — 수치가 필요하면 정본
co로 간다.
다루는 옛 국: 무쓰(陸奧) · 데와(出羽) — 둘이서 본토의 셋에 하나. 두 나라가 곧 하나의 세계다.

#여로 — 좁아지는 길
핀투의 일기에서 — 너른 들을 뒤로하고 북으로 보름째.
길이 좁아진다. 너른 들의 큰길은 말 탄 무사 둘이 나란히 갔다. 들이 끝나는 자리의 길은 짐말 한 마리에 사람 하나였다. 지금 걷는 길은 — 길이라 적으면 길에게 후한 셈이다. 길 한가운데서 풀이 자라는 것을 나는 처음 본다. 지나는 발이 풀보다 적다는 뜻이다.
들이 끝나는 마지막 저자에서 짐꾼들이 모두 짐을 내렸다. 값을 곱절로 불러도 어깨를 내주지 않았다. "북쪽 짐은 북쪽 어깨가 집니다." 우두머리 짐꾼은 그렇게 말하고, 제 대신 짐을 질 골짜기 사람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주었다. 사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소개받는 것 — 여기서부터는 그것이 흥정의 법이라 한다.
역참이 사라졌다. 남쪽에서는 큰길마다 말을 갈아탈 역이 있었고, 역마다 값이 붙어 있었다. 여기서는 마을에서 말을 부탁한다. "빌리는 게 아니라 부탁하는 겁니다." 혀가 말했다. "값을 먼저 물으면 안 됩니다. 여기서는 값보다 사정이 먼저입니다." 장사꾼이 값을 묻지 못하는 땅에 들어선 것이다.
사흘 전 산속 마을의 화롯가에서, 나는 혀가 처음으로 막히는 것을 보았다. 주인 노파가 길고 느리게 말했고, 혀가 두 번 되묻고, 세 번째에는 잠자코 불만 바라보았다. "같은 나라 말이긴 합니다." 한참 만에 혀가 말했다. "다만 — 제가 아는 나라가 여기까지인 모양입니다."
우스운 일을 적는다. 두 해를 걸으며 나는 이 나라 말을 제법 주워들었다. 흥정과 인사와 길 묻기는 이제 내 입으로 한다. 그런데 그 말이 여기서는 절반만 통한다. 두 해 만에 처음으로, 혀와 내가 같은 외인이 되었다.
칼은 말수가 더 줄었다. 대신 눈이 바빠졌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그는 꺾인 마른 가지와 짐승 발자국을 오래 본다. 어제는 드물게 먼저 입을 열었다. "남쪽 산은 사람이 무섭고, 여기 산은 — " 그는 끝을 맺지 않고 칼자루의 끈을 고쳐 묶었다.
첫눈이 왔다. 남쪽이라면 아직 가을걷이가 끝나는 달이다. 눈은 한나절 만에 발목을 묻었고, 마을 사람들은 하늘을 보고 올해는 늦다고 했다. 늦은 것이 이만하다.
눈 온 밤은 숯 굽는 이의 막에서 났다. 주인은 우리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 놀라기에는 너무 깊은 데 사는 사람이다. 그는 말없이 화로의 재를 헤쳐 불씨를 키우고, 우리 셋의 젖은 짚신을 불가에 나란히 세웠다. 아침에 값을 치르려 하자 손을 저었다. "눈 오는 날 재워 준 값은 눈이 받아 갑니다." 혀가 옮겨 놓고도 한참 그 말을 들여다보았다.
남쪽에서 나는 늘 다음 마을의 이름을 알고 걸었다. 여기서는 다음 마을이 있는지부터 묻는다. 있다는 답을 들어도, 거기까지 하루인지 사흘인지는 눈이 정한다 한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이제 길이 끝나는 데까지라 답한다. 처음에는 농으로 한 답이었다. 이제는 그 답밖에 남지 않았다.
종이를 센다. 여섯째 묶음이 손가락 두께만큼 남았다. 알맞다. 나라의 끝과 장부의 끝이 같이 온다 — 장사꾼의 여정이란 본래 그렇게 끝나야 맞는 것이다.
오늘 배운 것을 적는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사람을 데려가지 않는다. 사람이 길을 데리고 간다.
#사실의 땅 — 두 나라가 곧 하나의 세계
이 북방 전체가 옛 이름으로는 단 두 국이다. 동쪽의 무쓰(陸奧), 서쪽의 데와(出羽). 남쪽에서는 한나절에 국 경계를 두 번 넘은 날도 있었는데, 무쓰에 들어선 뒤로 나는 보름을 걷고도 여전히 무쓰에 있었다. 둘이 합쳐 본토의 셋에 하나라 들었다 — 이번에는 그 셈을 부풀림이라 의심하지 않는다. 걸어 본 다리가 증인이다. 우리 같으면 이만한 땅을 왕국이라 불렀을 것이다.
이 세계의 법은 겨울이 정한다. 우리와 달리 남쪽 사람들이 한 해를 모내기로 시작한다면, 북방 사람들은 한 해를 눈의 셈으로 시작한다 — 올겨울 눈이 몇 자나 올지, 그 셈이 봄의 모든 값을 정한다. 여름은 짧고, 짧은 여름마저 믿을 것이 못 된다 한다. 동쪽 큰 바다에서 차고 흰 안개가 들어앉는 해에는 벼가 여물지 못하고, 그해 가을 곳간이 빈다는 것이다. 들은 이야기다 —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는 농부의 얼굴은, 소문을 말하는 얼굴이 아니라 빚을 말하는 얼굴이었다.
산은 남쪽의 산보다 낮다는데, 더 깊다. 남쪽의 깊은 산에는 그래도 숯가마의 연기가 보였다. 여기 깊은 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산을 덮은 것은 남쪽처럼 곧게 선 삼나무가 아니라 가지를 넓게 벌린 너도밤나무 숲이다. 가을에는 그 열매가 비처럼 떨어져 곰과 멧돼지를 살찌우고, 잎이 지면 산 전체가 잿빛 바다가 된다. 그 바다 속으로 사냥꾼들이 들어간다 — 그들의 이야기는 뒤에 적는다.
바다는 둘이고, 성질이 다르다. 서쪽 바다는 겨울을 싣고 온다 — 그 바다에서 온 구름이 산에 걸려 데와 쪽에 눈을 사람 키 위로 쌓는다 한다. 동쪽 큰 바다는 차고 거칠어, 뱃사람들이 계절을 가려 나간다. 남쪽 세토내해처럼 배가 줄을 잇는 바다가 아니다. 우리와 달리 이 나라의 북방에서 바다는 길이라기보다 벽에 가깝다.
황금 이야기를 적어야겠다. 어릴 적 지도는 이 나라를 지팡구(우리 옛 지도가 일본을 부르던 이름)라 적고 황금의 지붕을 그려 넣었다. 두 해 동안 나는 그 지붕을 어디서도 보지 못했고, 이제는 늙은 지도장이의 꿈이라 치부하고 있었다 — 북방의 옛 고을에서, 마침내 보기 전까지는. 먼 옛날 이 북방에 황금의 수도가 있었다 한다. 북방의 금이 이 고을로 모여 도읍 하나를 통째로 빛냈고, 그 영화는 전쟁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지금 남은 것은 절 몇과, 그 절이 지키는 당(堂) 하나다.
승려가 문을 열어 주었다. 작은 당이었다 — 우리 시골 예배당보다 작다. 그리고 안팎이 금이었다. 기둥도, 벽도, 불상도. 겨울 빛 속에서 금은 타오르지 않고 가라앉아 있었다. 당 안에 모셔진 것은 부처만이 아니라고 했다 — 그 황금 도읍을 다스리던 이들이, 죽어서 그 안에 누워 있다 한다. 내가 본 것이다. 황금의 지붕은 있었다. 다만 그 지붕이 덮은 것은 산 자의 도시가 아니라 죽은 자의 잠이었다. 지팡구의 황금을 찾아 바다를 건너온 사내가 그 황금 앞에서 적을 말은 하나뿐이다 — 장부에 적을 셈이 아니라서, 일기에 적는다.
북방의 저자는 작지만 물건이 깊다. 모피 — 곰, 담비, 여우. 남쪽 약방이 비싸게 찾는 산의 약초. 그리고 흑요석 — 검고 빛나는 돌인데, 쪼개면 면도날보다 날카로운 날이 선다. 북쪽으로 갈수록 쇠 대신 이 돌의 날을 쓰는 이들이 많았다. 장사치들은 네 번째 물건을 말한다 — 카무이의 축복이라 한다. 값을 물었더니, 파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 했다. 장부에 적을 수 없는 물건이 있는 저자는 처음이다. 남쪽의 셈 밝은 자들은 이 땅을 두고, 들을 다 갈면 나라 몇을 더 먹일 것이라 말한다. 들은 이야기다 — 다만 그 셈에는 겨울이 빠져 있다.
#사람과 풍속 — 산과 함께 사는 법
산에서 곰과 사슴을 잡는 사냥 무리를 마타기(又鬼)라 부른다. 마을에서는 농부의 얼굴을 하고 살다가, 산에 들면 다른 법을 사는 자들이다. 산에 드는 날부터 그들은 마을의 말을 버리고 산의 말을 쓴다 — 쌀을 쌀이라 부르지 않고, 곰을 곰이라 부르지 않는다. 산의 신이 듣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 사냥꾼은 짐승을 쏘아서 얻는다. 그들은 산의 신에게서 짐승을 받는다 — 그래서 잡는 수를 미리 정해 두고 넘지 않으며, 잡은 곰의 머리맡에서 의례를 올려 받은 것에 답례한다. 사냥에서 돌아온 마타기들이 곰을 마을 어귀에 눕히고 절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본 것이다. 짐승에게 절하는 사냥꾼을 나는 처음 보았고, 보고 나니 — 절하지 않는 쪽이 도리어 설명이 필요한 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 땅의 더 오랜 주인들이 있다. 야마토 사람들이 오기 전부터 여기 살던 이들 — 남쪽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을 에미시(蝦夷)라 불렀고, 그 후예들이 지금도 골짜기마다 부족을 이루어 산다. 사무라이들은 그들을 야인이라 부른다 — 들 야(野) 자를 쓰는, 공경이 아니라 멸시가 실린 이름이다. 그러나 내가 본 그들은 들짐승이 아니었다. 쇠갑옷 없이 겨울 산을 다니고, 마키리라 하는 작은 칼 한 자루와 맨손으로 곰을 잡으며, 제 골짜기의 모든 바위와 여울의 이름을 외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와 달리 그들은 땅을 가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 땅과 함께 산다고 말한다. 혀가 그 말을 옮기며 한참 골랐던 것을 기억한다.
여기서 가려 적을 것이 있다. 남쪽 사람들은 북방 사람을 뭉뚱그려 에미시라 부르고 만다. 그러나 내가 보고 들은 바로, 그 이름 아래에는 여럿이 있다. 이 땅에 오래 산 에미시의 후예들이 있고 — 더 북쪽, 바다 건너에는 아이누라 하는 다른 사람들이 산다. 말도 살림도 같지 않다 한다. 북쪽 끝 항구에서 나는 바다 건너에서 온 배와, 그 배가 부린 모피와 말린 연어와 매를 보았다 — 배는 내가 본 것이고, 바다 건너 그들의 땅은 들은 이야기다. 한 항구 늙은이가 말했다. "남쪽 양반들은 우리도 저쪽도 다 한 가지로 부르지. 바다를 안 건너 본 자의 셈이오."
에미시의 후예도, 바다 건너의 아이누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카무이라 부르는 것을 모신다. 혀는 처음에 그 말을 신(神)이라 옮겼다가, 사흘 뒤에 스스로 고쳤다. "신이라 옮기면 절반만 옮긴 것입니다." 야마토의 신은 신사에 산다. 카무이는 — 곰에, 불에, 바람에, 쓰는 그릇 하나에까지 산다 한다. 세상 모든 것이 저쪽 세상에서 온 손님이고, 대접이 끝나면 제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남쪽의 신들과 카무이가 같은 것인지는 승려에게 물어도, 부족의 노인에게 물어도, 답이 달랐다. 다르다는 답만 같았다.
남쪽 절반과 북쪽 절반은 같은 고을 안에서도 다른 법으로 산다. 영주의 문서로 사는 집과 오래된 법도로 사는 집이 한 우물을 쓰고, 한 화롯가에서 두 신이 따로 밥을 받는 집도 보았다. 두 해 동안 나는 이 나라가 하나의 나라인지 예순몇의 나라인지 자주 헷갈렸는데, 북방에 와서 답을 하나 더 얹는다 — 어느 쪽이든, 야마토만의 나라는 아니다.
#혼세의 땅 — 깃발이 닿지 않는 곳
남쪽에서는 고개를 넘을 때마다 영주의 깃발이 바뀌었다. 여기서는 깃발이 드물어지다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무쓰의 남쪽에는 성과 작은 영주들이 있고 관소도 있다 — 길과 여행에 적은 길의 법이 거기까지는 닿는다. 그 북쪽부터는 영주의 법보다 마을의 법이, 마을의 법보다 산의 법이 무겁다. 우리와 달리 이 나라의 질서는 끝이 칼로 자른 듯 끝나지 않는다 — 천처럼 끝이 풀려 있다. 풀린 올 사이로 다른 세상이 비친다.
그 다른 세상의 한쪽이 야인의 부족들이다. 부족마다 골짜기 하나, 강 하나. 큰 우두머리는 없다 한다 — 큰일이 나면 골짜기들이 모여 의논하고, 끝나면 흩어진다. 영주를 모시지 않고, 영주도 그들을 다스린다고 말하지 못한다. 세금 대신 교역이 있고, 법 대신 오래된 약조가 있다.
다른 한쪽은 — 오니다. 예순 해 전, 남쪽 산에 오니들의 왕이 산성을 세웠다 한다. 그 뒤로 오니의 무리가 해마다 자라며 북으로도 손을 뻗는다는 것이다. 들은 이야기다 — 그러나 산길에서 나는 목책째 불탄 마을 하나를 보았다. 내가 본 것이다. 누구의 짓이냐 물으면 남쪽 출신 짐꾼들은 답을 골랐고, 야인 사냥꾼들은 고르지 않았다. 오니다 — 그들은 그렇게 답하고, 더 묻는 것을 이상해했다. 그들에게 그것은 괴담이 아니라 국경의 일이었다.
그러니 이 북방에는 남쪽에 없는 전선이 하나 있는 셈이다. 북으로 미는 오니와, 골짜기를 지키는 부족들. 다이묘의 군대는 거기 없다. 봉화를 올리는 것도, 고개에 돌무더기를 쌓고 밤을 새우는 것도, 야인들이다. 남쪽의 영주들이 서로의 깃발을 상대로 싸우는 동안, 깃발이 닿지 않는 땅에서는 사람이 사람 아닌 것과 싸우고 있다 — 두 해 동안 들은 전쟁 이야기 중에 이것이 가장 오래된 전쟁이라 했다.
하나 더 적는다. 너른 들에서 이 땅으로 드는 산맥에 요새가 하나 있다 들었다. 영주의 성이 아니라 승려와 봉인사가 지키는 요새 — 막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한다. 나는 그 요새를 멀리서도 보지 못했다. 다만 고개의 짐꾼들이 그 산맥 쪽으로는 해 진 뒤에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은 보았다. 값을 곱절로 불러도 그쪽 샛길로는 가지 않았다 — 짐꾼이 마다하는 돈을 나는 이 나라에서 두 번 보았는데, 두 번 다 산이 이유였다.
편자 주: 오니의 산이 선 것은 정본 연표의 '60년 전'이고, 그 세력이 북으로 미는 전선이 곧 이 장의 무대다. 오우의 세력과 요마의 결은 전국의 땅이, 산맥의 요새는 영계변경의 관문이 쥔다.
#영이의 땅 — 경계가 가장 얇은 땅
이 나라 어디서나 나는 영이(靈異)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쪽의 이야기는 대개 어둑한 자리에 있었다 — 길 끊긴 곳, 밤, 안개. 북방의 이야기는 대낮에 있다. 남쪽에서 옛날이야기로 듣던 이름들이, 여기서는 이웃의 일처럼 말해진다. 이 나라 승려들 말로는, 세상과 영계(靈界) 사이의 경계가 이 땅에서 가장 얇다 한다. 나는 경계를 재는 자(尺)를 모른다. 다만 이것은 안다 — 남쪽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목소리를 낮추는데, 북방 사람들은 날씨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로 한다.
눈에 묶인 저녁마다 화롯가에서 이야기를 모았다. 어느 집 안방에는 아이 모습을 한 것이 산다 — 그것이 머무는 동안 집이 일고, 그것이 떠난 집은 기운다 한다. 우리 같으면 집에 깃든 것을 쫓아 달라 사제를 부를 것이다. 이 집 주인은 그것이 떠날까 봐 밤마다 윗목에 상을 차린다. 강에는 물 밑에서 사람과 말을 끄는 것이 살아, 아이들은 여름에도 깊은 소(沼) 곁에 가지 않는다. 그리고 산에는 — 산사람이라고밖에 옮길 수 없는 키 큰 것들이 있어, 산나물 하러 들어간 이가 돌아오지 않으면 산이 데려갔다고 말하고 더 찾지 않는 골짜기가 있다 한다. 모두 북방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나는 어느 것도 보지 못했다 — 다만 상을 차리는 손과, 소 곁을 비켜 걷는 발과, 찾기를 그만두는 침묵은 보았다.
서쪽 데와의 세 영산에는 가지 못했다. 나는 그 길을 가지 못했다 — 눈이 먼저 닫았다. 다만 그 산을 다녀온 순례자를 둘 만났고, 둘의 말이 같았으므로 적는다. 세 산을 차례로 넘는 것은 한 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의례라 한다. 흰옷은 수의요, 산을 내려오는 것은 환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산들 어딘가에는 산 채로 곡기를 끊고 말라 가며 불(佛)이 된 행자들이, 죽은 뒤에도 썩지 않은 몸으로 앉아 있다 한다. 우리도 성인의 유해를 모신다. 그러나 우리 성인은 살다가 죽어 성인이 되고, 이 산의 행자는 성인이 되기 위하여 산 채로 죽는다. 이 이야기를 전한 순례자는 그것을 끔찍한 일이 아니라 거룩한 일로 말했다 — 나는 두 마음 사이에서 아직 결산을 내지 못했다.
오래된 이름들이 있다. 골짜기 사람들이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 야마토의 신도 부처도 아닌 이름들. 그중 하나를 나는 서로 멀리 떨어진 세 골짜기에서 똑같이 들었다 — 아라하바키. 에미시의 후예들은 그 이름에 고개를 숙였고, 야마토의 승려는 그 이름에 손을 저었다. 같은 이름이 한쪽에는 오래된 신이고, 한쪽에는 오래된 요마다. 장사꾼의 버릇대로 둘 다 적어 둔다 — 다만 세 골짜기가 입을 모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전설이 아니라는 것. 남쪽의 옛이야기 속 존재들이 여기서는 아직 깨어 있다는 것이다.
길은 끝내 북쪽 바다가 보이는 산에서 끝났다. 죽은 자들의 산 — 오소레잔(恐山)이라 한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잿빛 황야에 김이 오르는 구덩이들이 끓고, 그 한가운데 희게 가라앉은 호수가 있었다. 풀 한 포기 없는 비탈마다 작은 돌탑이 수도 없이 쌓여 있었다 — 먼저 죽은 아이들이 쌓는 탑이라 했다. 무너진 탑 곁에 누가 두고 간 짚신 한 켤레가 있었다. 아이의 발 크기였다. 내가 본 것이다.
그 산기슭에 눈먼 무녀들이 있다. 이타코라 부른다. 유족이 찾아와 청하면, 무녀는 방울을 흔들고 염주를 비비며 긴 소리로 죽은 자를 부른다. 나는 한 어미가 남쪽 전쟁에 끌려가 죽은 아들을 청하는 자리에 있었다. 무녀의 외는 소리가 한참 이어지다가 — 목소리가 변했다. 젊은 사내의 말씨였다. 어미는 울면서 그 목소리와 수확과 혼처와 어린 누이의 일을 이야기했다. 내가 본 것이다 — 그리고 무엇을 본 것인지는, 끝내 적지 못하겠다. 우리 교회는 죽은 자와 말을 트는 일을 금한다. 그 금지가 무엇을 막으려는 것인지 나는 이 산에서 처음 이해했고 — 그 금지가 무엇을 빼앗는 것인지도 처음 이해했다. 나는 그 자리에 더 있고 싶었고, 동시에 당장 떠나고 싶었다. 두 마음이 정확히 반반이었다는 것을 부끄러움 없이 적는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늙은 무녀 하나가 혀를 통해 내게 말했다. "죽은 자의 힘을 빌리는 것은, 죽은 자에게 빚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들은 이야기를 하나 보탠다 — 말만 빌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 무녀들이 있다 한다. 죽은 무사의 칼솜씨를, 죽은 승려의 경문을 빌려 제 몸에 입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한 자는 거기까지 말하고 목소리를 낮추더니, 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묻지 않았다. 두 해 동안 묻기를 그만둔 것이 몇 번 없는데, 이것이 그 하나다.
편자 주: 말을 전하는 이타코는 북방의 오랜 살림이다. 그 너머로 간 자 — 죽은 자의 기예를 입는 자 — 는 정본의 마인 직업이 쥔다. 탁자에 올리려면 GM의 허가가 먼저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무거운 채록을 옮긴다.
핀투의 일기에서 — 죽은 자들의 산으로 가는 길, 눈에 묶인 골짜기 마을의 사흘째 밤.
이 골짜기는 에미시의 후예들의 마을이다. 나는 여기서 이 나라에서 만난 가장 늙은 사람과 마주 앉았다. 부족의 장로다. 나이를 물었더니 웃기만 했다. 남쪽 저자를 다니는 젊은 사냥꾼이 장로의 말을 혀가 아는 말로 옮기고, 혀가 내게 옮겼다. 말이 세 입을 거쳐 내게 왔다. 오는 동안 세 번 깎였을 것이다. 깎이고 남은 것이 이만큼 무거웠다.
여든 해 전 — 장로가 아이였을 적 — 산이 달라졌다 한다. 새가 길을 바꾸고, 곰이 겨울잠 자리를 버리고, 산의 말로 불러도 답하지 않는 것들이 밤의 능선을 걸었다. 골짜기의 장로들이 모여 사흘을 의논했고, 결론은 짧았다. 카무이가 분노한다. 살아 있지 않은 것들이 문을 찾고 있다고. 산 것들의 세상이 얇아지고 있다고.
부족들은 남쪽으로 사람을 보냈다. 장로의 아버지가 그중 하나였다. 흑요석 날과 모피를 예물로 지고, 골짜기마다의 말을 전할 자격을 받아서. 야마토의 성과 절에 닿아 이렇게 전하라 했다 — 카무이가 분노한다. 문이 열리고 있다. 칼을 멈추고 들어라.
장로의 아버지는 이듬해 봄에 돌아왔다. 예물 꾸러미를 진 채로 — 풀리지 않은 채로. "선물이 돌아오면, 말도 돌아온 것이다." 장로는 그렇게 말하고 한참 불을 보았다. 남쪽의 영주들에게 그것은 오랑캐의 미신이었고, 남쪽의 절에게 그것은 제 산문 밖의 일이었다 한다. 사자로 갔던 이들 가운데는 끝내 돌아오지 않은 자도 있다.
나는 물었다 — 지금도 남쪽이 들으리라 생각하는가. 답이 통사 둘을 거쳐 왔다. "여든 해 전에는 경고의 값이 쌌다. 모피 한 짐이면 샀을 것이다. 지금은 — " 장로는 손을 펴서 화로의 불빛을 가렸다. "지금은 나라를 다 주어도 모자랄 것이다."
장로는 내가 적는 것을 오래 보다가 물었다. 어째서 적는가. 나는 답했다 — 장사꾼이라, 셈이 맞지 않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한다고. 여든 해 전에 이 나라는 경고 하나를 거저 받고도 값을 치르지 않았다. 그 빚이 어떻게 불었는지를 나는 두 해 동안 이 나라의 모든 길에서 보았다.
이 일기는 본 것과 들은 것을 가려 적기로 약속한 장부다. 이 장은 들은 이야기다 — 세 입을 거쳐 들은. 그러나 두 해 동안 내가 본 모든 것이 이 이야기의 증거였다. 그러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 표기를 함께 적는다. 들은 이야기다. 그리고 — 내가 본 것이다.
편자 주: 핀투가 채록한 경고는 정본 연표가 '영계 침식 시작'이라 적은 그 무렵의 일이다. 경고가 무시당했다는 것까지, 연표는 한 줄로 적고 만다. 그 한 줄의 무게를 탁자에 올리고 싶다면 — 두 번째 경고가 남쪽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캠페인을 시작하면 된다.
#탁자에서
Scene Tool. 이 절만 GM용 장면 도구다.
오우 캠페인의 결은 정본이 네 마디로 줬다 — 야생, 생존, 고대, 영계의 경계. 남쪽 장들의 사건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났다면, 이 땅의 사건은 사람과 사람 아닌 것 사이에서 난다. 그리고 그 전에 겨울이 있다 — 닫히는 고개, 끊기는 마을, 줄어드는 양식. 요마가 나오기 전에 눈이 먼저 일행을 시험하게 하라. 지역의 세력과 조우 경향은 전국의 땅이, 화롯가 전승 속 존재들의 데이터는 마을·길·산의 요마가, 길 위의 사건은 여로의 사건이 쥔다.
이 장에서 꺼내 쓸 만한 자리들:
- 두 번째 경고 — 야인의 장로가 여든 해 만에 다시 남쪽으로 사자를 보내기로 한다. 이번에 예물을 지는 것이 일행이다. 남쪽의 누가 듣고, 누가 비웃고, 누가 사자가 닿기 전에 막으려 드는가.
- 오니의 전선 — 한 골짜기의 부족이 북으로 미는 오니 무리에 맞서 겨울 고개를 지킨다. 야마토의 칼을 빌릴지를 두고 부족이 갈라졌다 — 일행은 환영과 불신을 한 화롯가에서 같이 받는다.
- 죽은 자의 의뢰 — 오소레잔의 이타코가 일행 중 한 사람을 콕 집어 말한다. "당신에게 말을 남긴 혼이 있다." 전해진 말은 부탁인가, 경고인가 — 부르는 목소리를 빌린 다른 무엇인가.
- 황금의 수도 — 남쪽 다이묘의 밀정들이 옛 황금 도읍의 전설을 캐러 북상하고, 일행이 길잡이로 고용된다. 폐허에서 그들을 맞는 것은 금이 아니라, 금과 함께 잠든 것을 지키는 오래된 무엇이다.
- 얼어붙은 순례 — 데와의 세 산을 겨울에 넘어야만 하는 사정을 진 행자의 호위. 산은 닫혔고, 닫힌 산에서 죽음과 재생의 의례는 글자 그대로의 일이 된다.
그리고 핀투의 일기는 이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은 자들의 산에서 내려온 날, 그는 이렇게 적었다 — "여기서 길이 끝났다. 끝난 것은 내 다리지, 이 나라가 아니다." 남쪽으로 머리를 돌린 사내가 마지막 묶음의 마지막 장에 무엇을 적었는지는 닫는 글에 있다.
남쪽은 이 땅을 끝이라 부르고, 이 땅은 남쪽을 늦었다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