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카이 견문 (東海見聞)
목차
권위. 본문은 Fiction-Only — 한 외인의 견문이며, 사실과 소문과 오해가 섞여 있다. 끝의 「탁자에서」만 Scene Tool. 본권에 법(法)은 없다 — 수치가 필요하면 정본
co로 간다. 이 책 전체의 약속은 이 책에 대하여에, 이 일기를 쓴 자는 화자에 있다.
다루는 옛 국: 이세(伊勢) · 시마(志摩) · 오와리(尾張) · 미카와(三河) · 도토미(遠江) · 스루가(駿河) · 이즈(伊豆). 미노(美濃)는 동쪽 산길(도산도)에 속한 국이나 여정이 그 가장자리를 스쳤다 — 배속의 본표는 교차표가 쥔다.
여로의 자리: 견문 일곱 번째. 오우미 — 호수의 나라에서 고개를 넘어 들어와, 호쿠리쿠·신에쓰 — 북국의 산길로 떠난다.

#여로 — 같은 길을 쓰는 사람들
핀투의 일기에서. 호수의 나라를 떠나 고개를 넘은 지 열흘 남짓, 동쪽 바닷길 위에서.
해 뜨기 전에 길이 먼저 깨어 있었다. 여인숙의 덧문을 여니 어둠 속으로 방울 소리가 지나갔다. 하나가 아니라 수십이었다.
"참배객입니다." 혀가 하품을 누르며 말했다. "이세(伊勢)로 갑니다. 해 뜨기 전에 한 리(里)를 벌어 두려는 겁니다."
흰 옷에 삿갓, 지팡이 끝에 방울. 늙은이가 있고 아이가 있고 절뚝이는 자가 있었다. 우리의 순례자는 죄를 갚으러 걷는데, 이 나라의 참배객은 — 내 눈에는 — 잔치에 가듯 걷는다. 걸으면서 노래했고, 노래의 후렴은 신의 이름이었다.
찻집 노파가 김 오르는 떡을 내놓으며 말했다. 참배객에게는 에누리를 해 준다고. "신궁 가는 손님한테 박하게 굴면 신이 본다 합니다." 노파의 셈을 나는 장부에 적어 두었다 — 신을 끌어들인 에누리는 에누리가 아니라 미끼다. 떡은 맛있었다.
한낮에 북소리가 났다. 길 끝의 흙먼지가 먼저 보였고, 그 다음에 창끝이 보였다.
칼이 말없이 내 소매를 끌어 길섶으로 내렸다. "행렬을 세지 마시오." 그가 말했다. "세는 눈은 오래 못 간다 하오."
군대였다. 창끝이 숲처럼 지나갔다. 말이 지나갔고, 쌀가마를 진 인부들이 지나갔고, 맨 뒤에 깃발이 지나갔다 — 내가 모르는 문양이었다. 묻고 싶었으나 칼의 충고를 사 두기로 했다.
장사꾼의 눈은 시키지 않아도 센다. 나는 속으로 창을 세다가, 백을 넘기기 전에 그만두었다. 세지 않은 숫자는 부풀릴 수도 없다.
군대가 지나가는 동안 참배객들은 길섶에 엎드려 있었다. 방울만 이따금 저 혼자 울렸다. 병사들은 그 소리에 눈도 주지 않았다.
행렬의 꼬리가 사라지자 길은 곧 다시 찼다. 물이 갈라졌다가 도로 합치듯, 자국도 남지 않았다. 참배객은 다시 노래했고 행상은 다시 호객했고 노파는 다시 떡을 쪘다.
"같은 길을 씁니다." 혀가 말했다. "신궁에 가는 자와, 싸움터에 가는 자와, 장사하러 가는 자가."
"길이 모자라지 않은가?" 내가 물었다.
"길은 모자라지 않습니다." 혀가 답했다. "모자라는 것은 길의 평온입니다."
저녁의 여인숙은 떠들썩했다. 낮의 군대 이야기를 하는 자는 적었고, 내일의 날씨와 떡값 이야기를 하는 자가 많았다. 익숙함이란 이 나라에서 가장 흔한 갑옷이다.
장부에 적는다. 이 나라에서 가장 붐비는 길은 동쪽 바닷길이다. 길이 좋아질수록 군대가 자주 지나간다. 내가 본 것이다.
#사실의 땅 — 동쪽 바닷길과 쌀의 바다
#가장 붐비는 길
미아코(교토)에서 동쪽 들로 가는 큰길이 이 지방의 등뼈다.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동으로, 동으로 — 일곱 길 가운데 가장 붐비는 길이라는 것은 길과 여행에 적었고, 와서 보니 붐빈다는 말이 모자랐다. 참배객과 행상과 파발과 군대가 한 길 위에 있고, 가도 마을이 몇 리마다 하나씩 길에 꿰여 있다. 마을마다 찻집이 있고, 찻집마다 제 명물 떡이 있고, 떡마다 제 자랑이 있다. 길이 장사를 먹여 살리는 것인지 장사가 길을 먹여 살리는 것인지, 걷는 동안 끝내 가리지 못했다.
호수의 나라에서 이세로 드는 어귀는 스즈카(鈴鹿)의 고개다. 고개 하나가 하루를 먹는 것은 어느 고개나 같은데, 이 고개는 도적의 이름까지 얹어 값을 받는다 들었다. 우리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 만나지 못한 이야기는 장부에 적어도 이문이 없으니, 이만 줄인다.
난소(難所)는 강이다. 도토미와 스루가 사이의 오이가와(大井川)에는 다리가 없고 배도 없다. 강가 마을의 사내들이 어깨로 사람을 메어 건네는데, 삯은 그날의 물이 정한다 — 무릎이면 얼마, 허리면 얼마, 겨드랑이까지 차면 곱절. 비 온 뒤에 닿은 우리는 강가에서 사흘을 묵으며 물 내리기를 기다렸다. 주막 주인은 비를 반기는 눈치였다. 까닭은 길과 여행에 적은 그대로다 — 비가 길손을 묶어 두기 때문이다. 고개 가운데는 밤이면 돌이 운다는 고개도 있다 들었다 — 사요노나카야마(小夜の中山)라 했다. 우리는 낮에 넘었다.
#노비의 들 — 쌀의 바다
이 나라는 땅의 7할이 산이라 들었다. 그래서 이런 들을 만나면 눈이 먼저 쉰다. 이세의 바닷가 들을 지나 북으로 돌면, 산이 물러나고 들이 바다처럼 열린다 — 미노의 '노(濃)'와 오와리의 '비(尾)'를 따서 노비(濃尾)의 들이라 부른다 들었다. 논이 지평까지 이어지고, 큰 강들이 그 들을 갈라 바다로 든다. 강 건너 북쪽 절반이 미노다 — 동쪽 산길에 속한 국이라, 나는 강 너머로 바라보기만 했다.
이 들이 얼마나 내는가. 오와리 한 국에서 쌀이 쉰만 석이 넘는다 들었다 — 세어 본 것은 아니다. 이세도 그에 버금간다 들었고, 강 건너 미노도 크게 밑돌지 않는다 들었다. 석(石)이 쌀 얼마인지는 용어·도량형 사전을 곁에 두면 되고, 장사꾼의 셈으로 줄이면 이렇다 — 이만한 들은 이 나라 어디에도 흔치 않다. 그리고 흔치 않은 것은, 이 나라에서는 반드시 누군가 칼을 들고 탐낸다.
#후지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스루가에 들어선 아침이었다. 길이 바닷가 솔숲을 빠져나오며 굽었고, 굽은 길 끝에서 — 흰 산이 하늘을 자르고 서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짐꾼들은 멈추지 않았다. 저들에게는 날마다 보는 산이고, 내게는 평생 처음 보는 산이었다. 꼭대기는 눈이고, 눈 아래는 푸르고, 산은 홀로 서서 어느 산에도 어깨를 빌리지 않았다. 이 일기에 산 이야기를 여럿 적었으나 고쳐 적는다 — 후지(富士)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다. 내가 본 것이다.
뱃사람들은 먼바다에서 이 산으로 제 자리를 안다 한다. 들이 너른 곳에서는 며칠을 걸어도 산이 따라온다. 이 지방의 길에서 길을 잃기 어려운 까닭의 절반은 이 산이다.
#바다 쪽 — 항구와 곶과 반도
들이 바다와 만나는 자리마다 항구가 있다. 쌀과 목재와 참배객을 실은 배들이 만(灣) 안을 부지런히 오가고, 만 밖의 큰 바다는 거칠어 배들이 뭍을 따라 긴다. 세토내해처럼 깃발을 파는 수군의 바다는 아니라 들었다 — 여기서 뱃삯을 정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파도다. 그리고 포구의 늙은이들은 파도보다 오랜 두려움을 하나 더 안다 — 아비 적의 큰 흔들림에 물이 한참 물러났다가 산처럼 돌아와 갯마을을 삼켰다 한다. 들은 이야기다. 물이 물러나면 줍지 말고 높은 데로 달리라는 것이, 이 바닷가 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셈이라 했다.
이세의 동쪽 곶 너머가 시마(志摩)다. 밭이 좁아 바다가 밭이라 했다. 바닷가에서 여인들이 숨 하나로 물밑에 들어가 전복을 따 올리는 것을 보았다 — 내가 본 것이다. 숨이 긴 자가 부자가 되는 나라는 여기뿐일 것이다.
스루가의 바다 동쪽으로는 이즈(伊豆)의 반도가 산째로 바다에 들어가 있다. 더운 물이 솟는 골짜기가 많다 들었고, 그 앞바다의 섬들은 죄인을 보내는 섬이라 들었다. 나는 반도의 어귀까지만 갔다 — 거기서 내 길이 북으로 꺾였기 때문이다.
#사람과 풍속 — 일생에 한 번
#이세 참배
이 나라 사람에게 어디 가고 싶으냐 물으면, 신분의 위아래 없이 같은 답이 돌아온다 들었다 — 이세. 일생에 한 번 신궁에 절하는 것이 농부의 꿈이고 하녀의 꿈이고, 들은 이야기로는 도적의 꿈이기도 하다.
꿈의 값은 마을이 함께 치른다. 마을마다 곗돈을 모으고 제비를 뽑아, 해마다 몇 사람씩 대표로 보낸다 들었다. 뽑힌 자는 마을 전체의 기도를 등에 지고 걷고, 돌아올 때는 부적과 이야깃거리를 마을 머릿수만큼 지고 온다. 한 사람이 걷고 백 사람이 절하는 셈이다 — 기도에도 대리인을 세우는 나라라니, 대리인 장사를 하는 나로서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더 기이한 것도 들었다. 주인 몰래 빠져나와 참배길에 오른 하인이나 아이는, 돌아와도 벌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 한다. 신에게 간 것은 도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같으면 일손이 빈 날수를 셈해 삯에서 깠을 텐데 — 이 나라의 주인들은 신 앞에서는 장부를 덮는다.
#온시 — 참배를 파는 사람들
신궁 아랫마을에는 참배를 장사로 하는 집들이 있다. 온시(御師)라 부른다. 겨울이면 여러 국을 돌며 신궁의 부적과 달력을 돌리고, 어느 마을 누구네가 제 손님인지 장부에 적어 두고, 그 손님이 평생에 한 번 이세에 오면 제 집에 재우고 먹이고 신궁 앞까지 안내한다. 기도를 대신 올려 주고, 시주를 받아 전하고, 돌아가는 손님 등에 다음 겨울에 팔 소문까지 들려 보낸다.
나는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배우고 싶은 장사를 만났다. 그들은 신앙을 팔지 않는다 — 신앙으로 가는 길을 판다. 길값은 어느 나라에서나 신앙보다 안전한 장사다. 묵은 온시의 집에서 장부 구경을 청했더니 주인이 웃으며 사양했다. 남에게 장부를 보이지 않는 자가 진짜 장사꾼이다. 그 장부가 이 나라에서 가장 긴 장부일 것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적는다.
#가도의 마을
가도 마을은 길에 기대어 산다. 새벽에는 짐꾼과 말을 세놓고, 낮에는 떡과 차를 팔고, 저녁에는 잠자리를 판다. 여인숙 앞에서는 계집아이들이 길손의 소매를 잡아끌며 제 집 자랑을 외치는데, 그 소리가 새 울음처럼 빠르고 높아 혀도 다 옮기지 못했다. 우리와 달리 이 나라의 가도 마을은 성벽이 없다 — 마을의 성벽은 길손의 발길이고, 발길이 끊기는 날이 마을이 무너지는 날이다.
#평야의 농민 — 풍요의 값
들이 풍요하면 농민도 풍요한가. 그렇게 묻고 다닌 며칠의 답을 줄이면 — 아니다. 들이 풍요할수록 깃발이 자주 바뀌고, 깃발이 바뀔 때마다 곳간이 한 번씩 열린다. 쌀을 거두어 가고, 사내를 데려다 성을 쌓게 하고, 말을 끌어간다. 가을이 오기도 전에 푸른 벼를 베어 가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 들은 이야기다. 적의 입에 들어갈 쌀은 제 논의 쌀이라도 태운다 한다.
그래도 농민들은 들을 떠나지 않는다. 떠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겠으나, 혀가 옮겨 준 늙은 농부의 말은 이랬다. "들은 거짓말을 안 합니다. 사람만 합니다." 나는 이 말을 장부의 첫 장에 옮겨 적을까 오래 망설였다.
#혼세의 땅 — 세 개의 큰 깃발
쌀이 나는 들과 사람이 다니는 길. 군웅이 탐내는 두 가지가 이 지방에는 다 있다. 그래서 이 지방에는 군웅의 기척이 어디보다 짙다. 여정의 어느 땅에서도 나는 이만큼 자주 군대를 비키지 않았고, 이만큼 자주 관소를 지나지 않았다. 하루에 관소를 세 번 지난 날이 있다 — 내가 본 것이다. 같은 길인데 문이 셋이면, 그 길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찻집마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 세 개의 큰 깃발이 이 들과 이 길을 두고 맞서 있다고. 하나는 들의 서쪽에서, 하나는 동쪽 바닷길에서, 하나는 북쪽 산에서 — 라고 듣기도 했고, 자리를 바꾸어 듣기도 했다. 깃발의 문양이 무엇인지도 찻집마다 다르게 말했다. 이름은 적지 않는다. 내가 이 나라를 떠날 즈음이면 셋 중 하나는 이미 없을지도 모르고, 넷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깃발의 이름을 장부에 적는 것은 어제의 환율을 적는 것과 같다.
편자 주: 세 깃발이 어느 가문인지 이 책은 끝내 적지 않는다 — 화자의 핑계와 같은 까닭에서다. 탁자의 연도를 정하면 깃발의 이름은 절로 정해진다. 전국의 연표의 「현재」 추천안이 그 자리이고, 깃발을 채우는 손은 GM의 것이다.
깃발이 셋이니 성은 셀 수가 없다. 들 가운데 솟은 낮은 산마다 성이 있고, 산이 모자라면 흙을 쌓아 산을 만든다. 해자를 두른 절도 보았다. 절인지 성인지 혀에게 물었더니 답이 짧았다. "난세에는 같은 말입니다."
길에 대해서도 고쳐 적을 것이 있다. 여로의 끝에 나는 "길이 좋아질수록 군대가 자주 지나간다"고 적었다. 거꾸로 읽어야 옳다. 길을 닦는 것은 영주이고, 영주가 길을 닦는 것은 장사꾼을 위해서가 아니다 — 제 군대를 빨리 옮기기 위해서다. 군대가 자주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서 좋아진 것이고, 장사는 그 길을 빌려 쓰는 것뿐이다. 빌려 쓰는 자는 빌려 준 자가 문을 닫는 날을 늘 셈해 두어야 한다. 전쟁의 소문이 닿으면 관소가 닫히고, 관소가 닫히면 이 붐비는 길이 하루아침에 마른다 — 그 셈은 길과 여행에 적은 그대로다.
귀도 많다. 찻집 노파가 묻는 것이 많았다. 어디서 오는가, 어디로 가는가, 길에서 군마를 보았는가. 사흘 뒤 다른 찻집에서 같은 차례, 같은 물음을 받았다. 노파들의 물음 가운데 절반은 이제 혀 없이도 알아듣는다 — 길에서 주운 말이 그만큼은 된다. 이 길 위에서는 노파도 누군가의 귀다. 들은 이야기다 — 라고 적고 싶으나, 물음을 받은 것은 나다.
그리고 불탄 마을 하나를 지났다. 기둥은 숯이 되고 우물에는 재가 떠 있었다. 사람들은 마을을 버리지 않고, 잿더미 곁에 새 기둥을 세우고 있었다. 망치 소리가 나는 폐허는 처음 보았다. 내가 본 것이다. 이 들의 사람들은 전쟁을 날씨처럼 산다 — 피하고, 견디고, 갠 날에 다시 짓는다. 날씨와 다른 점은 하나뿐이다. 전쟁은 사람이 멈출 수 있다는 것 — 그러나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혀는 옮기지 않는 쪽을 골랐다.
#영이의 땅 — 신의 집 바깥에서
#이세 신궁
신궁이 가까워질수록 길 위의 흰 옷이 늘었다. 마지막 하루는 길 전체가 참배 행렬이었다. 신궁 앞을 흐르는 이스즈가와(五十鈴川)에서 사람들이 손을 씻고 입을 헹구기에 나도 따라 했다 — 강물이 차고 맑아, 씻고 나니 정말로 무엇인가 씻긴 듯했다. 장사꾼의 신앙은 항구마다 환전이 된다고 적은 적이 있다. 이날의 환율은 나쁘지 않았다.
숲은 어두웠다. 몇 아름이 넘는 늙은 삼나무들이 하늘을 덮어, 한낮인데 길이 저녁 빛이었다. 그리고 — 그 붐비고 떠들던 사람들이, 숲에 들어서자 조용해졌다. 시킨 자가 없는데 그리되었다. 방울조차 울리지 않게 쥐고 걷는 자를 보았다.
신의 집은 보여 주지 않는다. 울타리가 있고, 울타리 안에 또 울타리가 있다. 사람들은 가장 바깥 울타리의 문 앞에 엎드려 절하고, 문에는 흰 천이 드리워 바람이 들출 때마다 모두 숨을 죽였다.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것은 지붕뿐이다 — 금빛 장식이 뿔처럼 얹힌, 띠를 인 지붕. 외인이라 못 본 것이 아니다. 이 나라 사람들도 거의가 평생 그 바깥에서 절하고 돌아간다.
안에 무엇이 계신가 물었더니 혀가 처음으로 대답을 사양했다. 온시는 거울이 있다고만 했다 — 신의 몸이 아니라, 신을 비추는 것이라고. 들은 이야기다.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물을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을, 숲이 먼저 가르쳤다.
품속의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 쥐고 있었다는 것을, 숲을 나와서야 알았다.
#스무 해마다 새로 짓는 집
신의 집 곁에는 꼭 같은 크기의 빈 터가 있었다. 흰 자갈만 깔린, 비질 자국이 선명한 빈 터. 무엇을 지을 자리냐 물었더니 온시가 답했다. "다음 집터입니다. 스무 해마다 신의 집을 헐고, 곁의 터에 똑같이 새로 짓습니다. 신께서 새 집으로 옮겨 가십니다."
나는 한참을 되물었다. 낡지도 않은 집을 왜 허는가. 헐 것을 왜 그토록 공들여 짓는가. 우리는 신의 집을 돌로 짓는다 — 천 년을 버티라고, 한 번 지어 영원하라고. 이 나라 사람들은 신의 집을 나무로 짓고 스무 해마다 헐어 새로 짓는다 — 그래서 영원히 새것이라고. 온시의 말을 혀가 옮겼다. "새것이 영원한 것보다 오래갑니다."
이 여정에서 가장 이해하지 못한 풍습으로 이것을 적는다. 그리고 적어 두거니와 —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나는 졌다. 천 년 묵은 돌집은 천 년 묵은 집이다. 스무 해마다 새로 서는 집은, 언제 가도 갓 지은 집이다. 어느 쪽 신이 더 젊겠는가.
#아츠타 — 검을 모신 숲
오와리의 바닷가, 들과 항구 사이에 오래된 숲이 있고 숲 안에 아츠타(熱田)의 신사가 있다. 큰 뱀의 꼬리에서 나온 검이 모셔져 있다 들었다. 신이 누이에게 바친 검이라고도 하고, 풀을 베어 불길을 돌린 검이라고도 하고 — 전승은 듣는 자리마다 조금씩 달랐다. 검은 보여 주지 않는다. 이세의 거울과 같다 — 이 나라는 가장 귀한 것일수록 보여 주지 않는 나라다.
싸움터로 가는 무사들이 들러 절하고 간다. 검에게 절하는 것인지 검을 쥔 신에게 절하는 것인지 물었더니, 내내 말이 없던 칼이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같은 것이오."
편자 주: 신궁 울타리의 안쪽과 아츠타의 검 — 화자가 멈춘 자리에서 이 책도 멈춘다. 울타리 안에 계신 이의 향과 법은 일본의 황신이 쥐고, 검 전승의 실체는 현존 신기가 쥔다. 화자가 그 숲에서 느낀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 거기에 적혀 있다.
#후지 — 불을 품은 산
후지는 보는 산이면서 비는 산이다. 산 자체가 신이라 들었다 — 산기슭의 신사들은 본전이 산을 향해 서고, 여름이면 흰 옷의 사람들이 꼭대기까지 오른다 한다. 옛적에는 불을 뿜었다 들었다. 신이 잠드신 것이라고도 하고, 숨을 고르시는 것이라고도 한다. 잠든 불 위에 눈이 덮여 저토록 희다는 것을 알고 나니, 아름답다는 말에 서늘함이 한 줌 섞였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가장 큰 불을 품고 있다 — 이 나라의 많은 것이 그렇다는 것을, 나는 이 산 아래서 배웠다.
스루가에서 나는 동쪽 바닷길을 버렸다. 길은 더 동쪽으로, 너른 들로 이어진다 들었으나 — 눈이 길을 지우기 전에 북국을 보아야 했다. 강을 거슬러 북으로, 산의 나라들로 든다. 그 이야기는 호쿠리쿠·신에쓰에 적는다.
#탁자에서
Scene Tool. 이 절만 GM용 장면 도구다.
이세 참배 호위. 참배단은 한 마을의 곗돈과 한 마을의 기도를 함께 지고 걷는다 — 잃으면 안 되는 것이 돈만이 아니라는 점이 이 호위 의뢰를 특별하게 만든다. 가장 붐비는 길은 가장 좋은 은신처이기도 하다. 일행을 노리는 자가 도적인지, 참배단 안에 다른 목적으로 끼어든 자인지는 GM이 정한다. 길 위의 재료(관소·강·잠자리·밤길)는 길과 여행에, 굴릴 사건은 여로의 사건에 있다.
가도 첩보전. 세 깃발의 땅에서 길은 전장의 일부다. 찻집의 노파, 여인숙의 주인, 나루의 사공 — 누구라도 누군가의 귀일 수 있고, PC들도 걷는 것만으로 누군가의 장부에 적힌다. 관소는 싸움이 아니라 사회 장애물이다 — 판정 틀이 필요하면 정본 비전투 규칙을 빌리되, 목표치와 수치는 본권이 정하지 않는다.
합전의 변두리. 큰 싸움을 직접 굴리지 말고 그 가장자리를 굴린다 — 징발 직후의 마을, 푸른 벼가 베인 논, 끊긴 다리, 피난민으로 역류하는 가도, 비로 불어나는 오이가와와 그 뒤로 다가오는 추격. 화자가 본 불탄 마을의 망치 소리까지가 한 장면이다.
신궁의 금기. 울타리는 넘는 순간 이 책의 바깥이다 — 신역 안에서 일이 벌어진다면 그 장면은 fc01의 것이다. 본권이 쥐여 줄 수 있는 것은 울타리 바깥이다. 온시의 체면, 참배 군중, 식년천궁을 앞둔 목재 행렬, 금기를 깬 자에 대한 소문 — 그리고 밤의 가도라면, 고개와 갈림길과 다리에서 기다리는 것들은 fc08이 쥐고 있다.
굴릴 거리가 더 필요하면 —
- 제비에 떨어진 사내가 참배단을 몰래 뒤따른다. 마을의 기도를 제 손으로 올리겠다는 것인데, 그가 품에 지닌 것이 기도문만은 아니다.
- 두 관소 사이에서 밀서 운반을 의뢰받는다. 보수는 후하고, 찻집 노파는 일행의 얼굴을 이미 알고 있다.
- 오이가와의 물이 사흘째 빠지지 않는다. 강가 마을에 발이 묶인 자들 — 참배단, 군의 사자, 정체를 밝히지 않는 일행 — 이 한 주막에 모인다.
- 세 깃발 중 하나가 신궁령의 쌀에 손을 대려 한다는 소문이 돈다. 온시가 일행을 고용한다 — 칼을 쓰지 않고 막아 달라고.
방울 소리와 북소리가 같은 길을 쓴다 — 내가 본 것이다.